1944년 6월6일 오전 5시50분. 영국해협에 정박 중이던 미 해군 함정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영국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과 마주 보는 프랑스 북서쪽 노르망디 해변에 설치된 지뢰와 방어장치들이 함포사격으로 제거됐다.

이어 6시30분, 유럽지역 연합군총사령관인 미국 아이젠하워 장군과 영국 몽고메리 장군의 지휘 아래 미국 제1군, 영국 제2군 등을 주축으로 한 9개 사단(6개 보병사단·3개 공수사단) 13만 명 병력의 연합군이 밀려들어오자 독일군(제352보병사단)의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노르망디 오마하(Omaha) 해변에 서니 눈부신 햇볕을 받으며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갈매기들이 한가롭게 날고 있었다. 59년 전 그날 해변을 피로 적시며 치열한 전투가 바로 이곳에서 벌어졌다고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때마침 썰물로 100m쯤 넓어진 해변에는 여름날 더위를 피해 놀러온 피서객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한가로이 거닐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오늘 이들이 누리는 평화의 뒤안길에는 59년 전 숱한 젊은 병사들의 피어린 희생이 있었다. 그런 희생을 밑거름으로 오늘 같은 평화를 누릴수 있는 것이 다. 자유와 평화 뒤에는 그를 위한 투쟁이 있게 마련이며, 거저 얻는 자유란 없다. 그런 사실을 떠올리자 숙연한 느낌이 들었다.

오마하 해변은 유타 해변과 함께 미군이 상륙작전을 펼쳤던 두 지점 가운데 하나다. 오마하는 당시 노르망디 해변의 다섯 개 해변 가운데 오른쪽으로 두 번째 해변을 가리키는 암호명이었다. 길이는 약 10km. 해변을 굽어보는 30m 언덕 위에는 대형 대포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독일군의 콘크리트 벙커가 줄지어 있었다. 그 벙커들은 지금까지도 곳곳에 널려 방문객들을 말없이 맞고 있다.

오마하 해변 전투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의 처절한 전투장면에서 잘 그려졌다. 오마 브래들리 중장이 지휘하는 미 1군 소속 제1보병사단·제29사단 116연대가 선봉에 섰다. 해변 가까이 우뚝 선 기념비(National Guard Monument)와 더불어 해변 곳곳에 참전 미군부대의 기념비가 자리잡고 있다. 미 제1사단기념비·제29사단 기념비 등이다. 이들 기념비 측면에 새겨진 병사들의 긴장된 얼굴 조각은 그날의 숨막혔던 상황을 말해준다.

결과는 성공이었지만 오마하 작전은 예상보다 많은 미군 희생자를 낳았다(D-데이 당일인 6월6일 하루 미군 사망자는 2400명). 미군 공습이 독일군 벙커를 제대로 맞히지 못하고 후방을 때리는 바람에 독일군은 큰 손상을 입지 않고 상륙군을 맞았다. 공격조에 가담키로 한 29개의 DD 수륙 양용 탱크 가운데 2대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영국해협의 거친 파도에 잠겼다. 일부 병력은 파도에 밀려 원래 계획했던 곳에 상륙하지 못해 타 부대와 뒤엉켜 작전에 혼선을 빚었다. 낮 12시가 돼서야 독일군의 사격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출구가 하나 둘 열렸다.

이곳 오마하 해변에서 병에다 모래를 담고 있는 한 젊은이를 만났다. 미국 시카고에서 왔다는 데이비드 리버먼(27). 그의 할아버지는 제29사단 전투기술대 소속 하사관으로 오마하 전투에 참전, 독일군이 설치한 지뢰 등 장애물 제거 임무를 펴다 전사했다. “60년 세월 가까이 아침·저녁으로 남편이 남기고 간 유품을 어루만지는 할머니께 드리려고 모래를 담아간다”고 말했다. 사진으로만 보던 할아버지가 그날 거칠게 몰아쉬었을 숨결이 가까이 느껴지기 때문일까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3. 7. 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