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전쟁 전환점이자 미국의 운명 결정

작열하는 태양 아래 남부연합군 170문의 포가 불을 뿜은 지 한 시간, 게티즈버그 남쪽에서 남군 3개 사단은 전진을 시작했다. 묘지 능선을 따라 포진하고 있는 북부연방군의 중앙을 돌파하려는 1만3000여 병사의 함성이 벌판을 메아리쳤으나 이내 쏟아지는 북군의 포격 앞에 그 기세는 잦아들었다.

온몸으로 포화를 받아 가며 남군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북군 진지에 육박했지만 그들을 가로막은 북군의 총격 앞에 한 시간도 못돼 벌판은 신음과 피로 물들었다. 사실상 패배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지휘관의 무모한 작전이 빚어낸 결과였다.

남북전쟁의 전환점이 된 게티즈버그 전투는 1863년 6월, 리 장군의 북버지니아군 7만5000명이 버지니아를 떠나 북진하며 그 막이 올랐다. 북부연방 그랜트 장군의 테네시군이 빅스버그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리는 북부 깊숙이 워싱턴과 필라델피아 배후를 위협, 적의 주력을 유인해야만 했다. 북진하는 리를 쫓아 북부연방은 미드 장군의 포토맥군 9만 병력을 투입했다.

한 달 가까운 추격전 끝에 7월1일, 게티즈버그에서 양군은 조우전에 돌입한다. 첫날 포토맥군 제1, 11군단은 북버지니아군 제2, 3군단의 공격에 밀려나지만 전열을 유지한 채 게티즈버그 남쪽의 고지와 능선을 따라 유리한 방어선을 확보했다.

다음 날이 되자 남군에는 제1군단이 가세했고 북군은 5개 군단이 증원됐다. 리는 반원형의 북군 방어진의 좌익을 우회해 배후로 진출하기로 하고 이 지점에 롱스트리트 장군의 제1군단을 투입했다. 롱스트리트는 진로를 가로막는 포토맥군 제3군단을 격퇴시켰으나 북군 주 방어선 돌파와 배후 진출에는 끝내 실패했다.

전투 3일차의 향배를 두고 롱스트리트는 북군 좌익에 대한 우회 공격을 강화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리의 선택은 반대로 북군 중앙을 향했다. 그에게는 피켓 사단 등 3개 사단에 의한 정면 돌격으로 우세한 적을 분쇄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챈슬러빌에서 두 배에 이르는 북군에 과감한 공격을 퍼부어 대승을 거둔 의기가 그에게 여전히 살아 있었다.

롱스트리트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리는 견고한 화망을 짠 북군 앞으로 자살적인 정면 돌격을 결정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눈앞에서 일어난 처참한 패배를 바라봐야 했다.

마침내 패배를 인정한 리는 피켓에게 남은 사단 병력을 수습, 역습에 대비하라고 명령했지만 그의 대답은 싸늘했다. “장군님, 제게는 사단이 없습니다.” 돌격에서 피켓 사단은 13개 연대장이 모두 죽거나 다쳤고 병력의 반을 잃었다. ‘피켓의 돌격’이라 불리는 이 비극과 함께 게티즈버그 전투는 2만80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남군의 패배로 끝났다.

장병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던 리는 뛰어난 전략가였으나 세심함이 부족한 지휘관이었다. 그의 빛나는 승리에는 스톤월 잭슨과 같이 뛰어난 부하들의 활약이 필수적인 요소였다. 그러나 잭슨이 전사한 뒤 게티즈버그에서는 그만한 부하들이 부족했다. 또 챈슬러빌의 영광을 되살리기에는 상황이 너무 불리했지만 리는 무리한 돌격에 집착, 결국 패배했다.

게티즈버그 전투는 위대한 지휘관도 평정심을 잃고 자신의 약점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채 과거의 자신감만으로 결정을 내린다면 패배의 길을 걷는다는 값비싼 교훈을 남긴 전투였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8. 1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