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다!”

1916년 9월15일 아침, 솜 전선 북동쪽의 플뢰르∼쿠르셀레트 지역에서 진지를 방어하던 독일군 병사들은 아침 안개를 뚫고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쇳덩어리를 보고 혼비백산했다.

강철의 괴물이 대포와 기관총을 마구 쏘아 대며 진지로 다가오자 참호를 지키던 독일군 병사들은 겁에 질려 앞다퉈 달아나거나 혹은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항복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영국의 새로운 신병기인 전차가 처음으로 전선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초기 기동전 상황이 무위로 돌아가고 고착된 전선이 형성되면서 참호전의 양상으로 바뀌었다. 철조망, 진흙탕, 맥심 기관총으로 대표되는 방어 화력 앞에 병사들은 전투는 고사하고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병사들의 지상 과제는 살아남기 위해 참호를 파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육상에서도 병사들을 보호하면서 전선을 돌파, 이동시킬 수 있는 장비, 즉 장갑을 두르고 전선을 자유로이 기동할 수 있는 차량의 필요성이 새로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보병을 지원할 수 있는 기관총이나 포를 탑재한 장갑 차량은 사실 이미 존재했다. 하지만 이들로는 폭탄이나 철조망·참호 같은 장애물을 극복할 수 없었다. 이 문제의 답을 찾은 사람이 영국의 공병 장교 어니스트 스윈턴이었다. 스윈턴은 남아프리카의 광산에서 사용하는 무한궤도 차량을 기초로 포와 기관총을 붙인 장갑궤도 차량을 제안했다. 해군성 장관 윈스턴 처칠은 이 차량의 개발에 적극적인 추천을 아끼지 않았고 이 새로운 차량의 개발은 승인됐다.

1915년 2월17일 시험 주행에서 무한궤도 차량이 진창에 빠진 2.2톤 장갑 차량을 끌어내는 데 성공하자 영국은 본격적으로 장갑궤도 차량의 개발에 착수했다. 새로운 차량의 성능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를 조정한 결과 이 장갑궤도 차량은 최소한 너비 4m의 참호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하며 최소 시속은 6km 이상, 거기에 맥심 기관총 2정 혹은 포 2문을 설치한 포탑을 장착할 것이 요구됐다.

1916년 2월 마침내 성공적으로 주행 시험을 마친 이 신무기는 수컷이란 이름의 모델에는 6파운드 포 2문과 기관총 4정을, 암컷이란 이름의 모델에는 맥심 기관총 6정을 장착하게 됐다. 그리고 탱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전차는 데뷔전인 솜 전투에서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전선에 투입된 전차는 32량에 불과했으며 운용 전술의 미비와 전차 자체에 기술적인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비록 독일군들에게는 엄청난 심리적인 충격을 안겼지만 결국 그날의 전투가 끝났을 때 전차 부대는 운용 가능한 전차를 모두 상실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영국 총사령부는 1000량의 전차를 발주했다.

1917년 11월17일의 캉브레 전투에서는 상황이 또 달라졌다. 도합 324량의 전차가 투입된 이날 전투에서 영국군은 독일군이 형성한 힌덴부르크 라인의 3중 방어선 돌파구를 뚫었다. 이날 하룻동안만 8000명을 포로로 잡고 야포 100문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린 것이다.

캉브레 전투의 승리로 연합국과 동맹국은 모두 전차를 만들어야 함을 깨달았다. 각국은 전차의 개발에 일제히 뛰어들었다. 전차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8. 1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