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기상캐스터(사후 72기) 조 석 준

1981년 초여름, 전역을 두어 달 앞두고 나는 다른 공군 장교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대기업에 취업의 길을 모색했다. 그 결과 대우그룹 경영 분야에 합격되어 발령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 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졸업한 대학으로부터 “한국방송공사에서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기상전 문기자’를 뽑는다.”는 연락을 받고 많은 생각을 하였다. 며칠을 고심한 끝에 새로운 직업 에 대한 기대감과 최초의 사람이라는 모험심이 발동되면서 한국방송공사에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대학 시절 방송에 대한 강의를 듣기는 했지만 처음으로 해보는 방송 업무는 너무나 생소한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 내가 믿고 있었던 것은 공군에 근무하면서 얻은 실무적인 기상 지 식과 아침·저녁으로 조종사에게 기상 브리핑을 했었던 자신감뿐이었다. 방송국의 실무에 익숙해지면서 새로운 일에대한 두려움은 차츰사라졌지만, 최초의 기상전문기자인 까닭으로 모든 일이 낯설었다.

새벽 6시부터 밤 10시, 경우에 따라서는 밤 12시까지 이어지는 업무로 방송국 숙직실을 마치 하숙방처럼 쓰기도 했다. 이 시기에 몸은 힘들었지만 일의 흥미가 더해지면서 학교에 처음 들어간 초등학생과 같은 설레임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내가 방송국에 들어가기 전까지만해도 방송국에서의 일기 예보는 그 당시 중앙관상대 공무 원이나 방송국 아나운서들이 담당하였다. KBS의 경우 신은경 아나운서와 홍사선 통보관(현 기상청 예보국장)이 담당하였고, MBC에서는 김동완 통보관이 날씨를 전했다. 나는 KBS에 입사해서 처음에는 날씨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원고를 쓰고 일기 예보를 할 때는 진행을 하는 PD 역할을 했다.

그러던 1982년 초여름, 회사의 방침에 따라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기상전문기자가 직접 일기 해설을 하는 방송을 하게 된 것이다. 공군 기상장교 시절에 아침·저녁으로 기상 브리핑을 한 것이 성공적인 방송 출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두 말 할 나위도 없다.

멋모르고 처음 기상전문기자 생활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외롭지가 않다. 왜냐하면 방송국마다 거의 대부분 공군 기상장교 후배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방송국에 근무하 는 기상전문기자는 SBS의 이찬휘 차장(73기), 공항진 기자(81기), MBC의 지윤태 차장(80 기), 조문기 기자(87기), KBS의 홍사훈, 이기문 기자(84기), YTN의 한정호 기자(85기), 김한 욱 기자(88기), 김진두 기자(88기) 그리고 인천방송의 이진환 기자(91기) 등으로 단 한 명을 빼놓고는 모두가 공군 그것도 기상장교 후배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특정 분야에서 공군 장교 출신이 절대적인 독점을 하고 있는 분야도 드물 것이다. 이밖에 대학교나 기상청에도 공군 기상장교 출신이 많이 있지만 우리 분야처럼 독점적인 위치는 아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공군의 프로 정신

방송 생활을 하면 할수록 공군에서 체득했던 지식들이 능력 향상의 원천임을 느끼곤 한다. 내가 공군장교 시절에 배운 것은 기상 브리핑이나 기상 실무 등 기능적인 측면도 있지만 더 욱 중요한 것은 일에 대한 프로 의식이 자연스럽게 길러진 것이라 하겠다. 흔히들 공군 출 신을 ‘신사’라고 일컫는데 이것은 군대답지 않게 부드러운 근무 분위기 속에서도 각자가 최선을 다해 책임을 완수하는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전투기를 가장 빠르고 완벽하게 출격시키기 위해서 기상·관제·정비·행정 등의 분야에서 경직된 조직력보다는 오히려 부드러운 프로 정신이 있었기에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 듯하다. 나는 요즘 기상 컨설턴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기상 컨설턴트는 기상 캐스터와 경영 컨설턴 트를 합친 개념이다. 우리 나라에는 2만 개의 직업이 있는 반면에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는 20만 가지의 직업이 있다고 한다.

즉, 경제가 발전할수록 직업의 숫자는 정비례한다는 이야기다. 외국의 경우에는 유통 기상 컨설턴트가 백화점에서 물품의 구매나 판매를 담당하고, 항공 기상 컨설턴트가 민간 항공기에 기상 정보를 제공하거나 날씨에 따른 조종 상담을 하고 있다.

이처럼 한 나라가 전문화된 선진 사회가 되려면 그 바탕에는 공군처럼 전문적인 기술과 프로 정신으로 면면이 전통을 이어가는 조직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덕적인 기준을 유치원에서 모두 배우듯이 나는 평생 직업에 필요한 프로 정신 을 공군에서 배웠다.

< 출처 : 공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