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 형제가 개발한 비행기가 하늘을 난 지 이미 100여 년이 흘렀고 그동안 하늘에서는 수많은 전투기가 명멸했다. 하지만 안토니 포커가 개발한 아인데커(사진)야말로 최초의 진정한 전투기로 꼽힌다. 포커 아인데커를 진정한 전투기의 시초로 꼽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전쟁의 양상이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지루한 참호전으로 이어지자 새처럼 하늘을 난다는 인류의 꿈은 하늘을 통해 전선을 마음대로 넘나들면서 참호 너머의 적정을 살피기 위한 수단으로 바뀌었다.

양측이 점차 더 많은 비행기를 운용하면서 정찰기들이 하늘에서 조우하는 일이 빈번해졌고 양측 조종사들은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을 찾기 시작했다.

가장 명쾌한 해결책은 기수에 기관총을 고정 장착하는 것이었지만 빈약한 주익의 강도와 기관총의 조준선이 프로펠러를 통과해야 하는 당시 비행기들의 구조적 한계 때문에 전방에 기관총을 고정 장착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먼저 해결책을 마련한 것은 연합국이었다. 프랑스의 조종사 롤랑 가로스는 친구이자 항공기 설계자인 레몽 소르니에의 도움을 받아 프로펠러 회전 반경 사이에 기관총을 설치, 프로펠러의 회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려 했다.

하지만 기술적인 한계로 구현에 실패하자 그 대안으로 총탄이 프로펠러에 명중하더라도 프로펠러에 손상을 주지 않고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프로펠러 날에 강철제 전향판을 설치한 비행기를 만들었다.

대부분의 총알은 프로펠러 사이로 빠져 나갔고 혹시 프로펠러에 총탄이 명중하더라도 전향판에 맞고 퉁겨져 나갔다. 가로스는 이 임기응변 장치를 사용, 1915년 4월 동안 5기의 독일 비행기를 격추시켰고 이 장치의 효용성에 고무된 연합국은 즉시 양산화를 서둘렀다. 그러나 운이 다했는지 가로스의 비행기가 엔진 고장으로 독일의 점령지에 추락하면서 가로스의 비행기를 입수한 독일이 싱크로나이즈드 기어를 만들 기회를 갖게 됐다.

네덜란드의 항공 기술자 포커는 가로스의 기체를 보고 그의 아이디어에는 감탄했으나 철제 전향판으로 총탄을 퉁겨내는 것은 원시적이라 생각했다. 포커는 전향판 대신 프로펠러의 회전과 방아쇠를 연동해 프로펠러가 앞에 없을 때만 총탄이 발사되도록 하는 싱크로나이즈드 기어를 개발, 새로운 전투기 아인데커에 장착했다.

사실 아인데커는 예리한 선회가 가능하기는 했지만 엔진 출력이 부족했고 보조익도 없어 비행 성능은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크로나이즈드 기어는 아인데커를 치명적인 무기로 만들었다. 적의 기체를 십자선 안에 넣고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적을 격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1915년 8월 실전에 투입된 이래 아인데커는 전선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연합군 항공기를 격추시켰고 그 결과 연합군 조종사들은 아인데커의 모습만 봐도 회피하는 지경에 빠졌다.

아인데커를 치명적인 무기로 만든 또 하나의 요인은 막스 임멜만과 전투기 전술을 확립한 오스발트 뵐케 같은 우수한 파일럿이었다. 임멜만은 다양한 공중 기동술을 고안해 냈고 뵐케는 현대 공중전의 전술 기초를 확립했다. 이들 파일럿의 자질을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포커 아인데커는 진정한 최초의 전투기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8. 22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