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미 남북전쟁의 게티즈버그 전투, 한국전쟁의 인천상륙작전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승패를 갈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만큼 노르망디 전투는 인류가 치른 몇 안되는 치열한 전투 가운데 하나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연합군은 작전 두 달 만인 1944년 8월 프랑스 파리를 되찾은 데 이어 독일 본토로 진격해 들어갈 수 있었다.

큰 그림으로 보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히틀러의 ‘유럽 요새’를 연합군이 기습 공격한 작전이었다. 독일군은 지중해로 이어지는 프랑스 남부로 상륙해올 것으로 예상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독일군의 허(虛)를 찌른 작전이었다. 오마하 해변에 바로 잇닿은 ‘포인트 두 호크’(Pointe du Hoc) 절벽에서 미군 특공대가 벌인 작전도 그 가운데 하나다.

제2차 세계대전사 자료에 따르면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연합군 지휘부는 포인트 두 호크 절벽 위에 있는 독일군 포대와 탄약고를 파괴하려는 비밀작전을 짰다. 30m가 넘는 아주 가파른 절벽 때문에 그곳을 제압하기란 쉽지 않은 작전이었다. 독일군도 지형지물을 믿고 “적군이 설마 이곳으로 오겠느냐”며 마음을 놓은 곳이었다. 미 레인저 부대 특공대 225명이 나섰다. 생존자가 90명에 지나지 않은 점으로 미뤄 이들이 얼마나 어려운 전투를 벌였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독일군 벙커 위에 세워진 칼 모양의 대형 화강암 기념비에는 그날 전사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절벽 위의 지역은 땅이 고르지 못하고 울퉁불퉁하다. “연합군의 폭격을 워낙 심하게 받은 탓”이라고 안내자는 설명한다. 곳곳이 움푹 팼다. 그래도 독일군의 벙커는 워낙 견고하게 지어진 까닭에 일부 파괴된 것 말고는 옛 모습 그대로 였다. 그런 벙커 근처에서 아이들이 술래잡기 비슷한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미 레인저 특공대 용사들과 독일군이 벌인 총격전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모를 것이다.

전투교범은 공격군이 방어군보다 일반적으로 3배 이상의 병력을, 시가전 같은 특이 지형에서는 6배 이상 돼야 승리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따라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해변을 굽어보는 유리한 지형의 독일군을 분쇄하는 데는 큰 희생을 치러야 했다.(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벌어진 1944년 6월6일부터 6월20일 사이의 전사자는 미군 2만4162명, 영국군 1만3572명)

노르망디 해변 일대에는 참전국 별로 따로 전사자들을 모신 대형묘지들이 흩어져 있다. 독일군 묘지도 그 가운데 하나다. 상륙작전이 벌어진 오마하 해변을 굽어보는 언덕에는 거대한 미군 묘소(The American Cemetery)가 자리잡았다.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그 뒤를 이은 유럽 진공작전에서 숨진 9386명의 미군 장병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묘소 입구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먼저 웅장한 기념비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기념비 가까이에는 실종자(missing in action)들의 이름을 새긴 판(板)이 눈길을 끈다. 마치 미 워싱턴에 있는 베트남전 기념탑에 전쟁 실종자들의 이름을 새겨놓은 것과 같다. 백발이 성성한 미국 할머니가 그 이름 가운데 하나를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적신다. 슬픔을 나타내는 데는 동서양의 차이가 없다.

묘소 안으로 들어서면 온통 흰 십자가 묘비들이 눈에 들어온다. 유대인 출신 미군 전사자 묘소에는 다윗 별 모양을 한 묘비도 보인다. 묘비에 새겨진 연대는 대부분 1944년 여름이다. 묘소 관리소의 한 관계자는 “그래서 해마다 여름이면 장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미국에서 많은 방문객이 몰려온다”고 말한다. 묘소를 나서려는데 마침 미국 중학교 1학년 소년·소녀 20여 명이 손에 손을 잡은 채 함께 대형화환을 들고 들어선다. 기념비에 바칠 화환이다. 전쟁을 모르고 자라온 세대들에게는 노르망디 해변 일대가 생생한 역사교육의 현장일 것이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3. 7. 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