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처음으로 전장터로 만든 것은 전투기다. 하지만 하늘을 전략을 좌우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 최초의 수단은 제펠린 비행선과 폭격기였다.

1915년 5월31일, 런던 시민들은 달이 환히 비추는 음산한 밤하늘에 타원형의 그림자가 모습을 나타내는 것을 목격했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에 이어 귀를 찢는 것 같은 폭음이 들렸고 부근에는 불길이 솟아올랐다. 독일의 제펠린 비행선(사진), LZ-37이 첫 공습에 성공한 것이다. 1915년 9월에는 LZ-13호가 런던 폭격을 감행, 13명의 런던 시민이 사망하고 87명이 부상했다.

제펠린의 공습이 있기 전까지 영국의 국민들은 바다 너머의 섬에서 막강한 해군의 보호를 받았기에 전쟁은 남의 이야기였다. 독일은 이런 영국 해군에 방해받지 않고도 영국의 콧대를 꺾을 방법을 찾았고 결국 그들이 찾은 해답은 제펠린 비행선이었다.

속도도 느리고 기관총이나 대공 사격에 취약해 폭격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일몰시에 비행선을 출격시키면 느린 속도에도 불구하고 높이 상승하면서 밤하늘을 몰래 비행할 수 있었다. 야간이므로 전투기의 방해도 없으며 더욱이 등화관제의 개념도 없었으므로 불야성을 이루는 런던 같은 대도시는 밤하늘에서도 쉽게 찾아낼 수 있고 폭격이 끝나면 새벽의 미명을 이용, 안전하게 귀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러한 구상 하에 수행된 비행선을 이용한 폭격 작전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영국은 말 그대로 혼란에 빠졌다. 이후 제펠린 비행선의 공습 빈도는 점점 증가했다. 제펠린의 공습은 런던의 밤을 아비규환의 소용돌이로 몰아갔다. 1916년 9월2일에는 최대 규모인 14척의 제펠린이 출현, 폭격을 감행했으며 수백 발의 폭탄을 투하했다. 제펠린 공습의 실제 효과는 대단치 않았지만 심리 효과는 엄청났다. 영국 시민들은 밤마다 제펠린 공습의 불안에 떨어야 했고, 공습에 대비해 방공호를 만들고 경보가 전달되면 방공호로 대피하는 생소한 훈련을 받아야 했다.

결국 견디다 못한 영국은 본토 방위를 위해 100여 대의 전투기를 전선에서 빼내 해안선에 배치했다. 영국 전투기들의 성능이 향상되고 수가 늘어나면서 제펠린 비행선의 영국 공습은 점점 어렵게 됐고 1917년 중반 이후로는 완전한 자살 행위가 됐다.

하지만 독일은 영국 폭격을 포기하지 않았다. 1916년 11월28일부터 효용성이 떨어지는 제펠린 비행선 대신 폭격기 투입 빈도가 늘어났고 1917년에는 260마력 메르세데스-벤츠 엔진 2기를 장착, 90마일에 달하는 속도에 300마일 정도의 항속거리와 1100파운드의 탑재량을 가진 고타 G-IV 폭격기가 등장했다. 향상된 비행 성능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이들은 편대 대형을 구성, 전투기들로부터 효과적으로 자신을 방어할 수 있었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전 기간을 통해 총 51회의 제펠린 공습을 겪었고 1916년 11월 이후 등장한 폭격기들에 의한 52회의 공습을 경험했다. 이로써 9000여 발, 280여 톤에 달하는 폭탄이 투하됐고 1413명의 영국 시민이 사망했으며 34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공습 작전의 결과 이제는 더 이상 영국도 전쟁의 안전지대가 아님이 증명됐고 전략 폭격의 개념이 만들어졌다.

〈 우보형 전사연구가 〉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8. 29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