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전역은 인간 의지의 한계를 시험하는 장소였다. 그리고 그 고난 속에서 롬멜(사진)과 몽고메리 같은 영웅들이 탄생했다. 그러나 그들도 한 인간으로서 약점을 가지고 있었고 치명적인 패배의 쓴잔을 맛봐야 했다.

1941년 가을 영국 수상 처칠은 기세를 떨치고 있던 롬멜 휘하의 독일군을 강타할 것을 지시한다. 당시 이집트에 주둔한 영국 8군 병력 규모는 독일·이탈리아군과 비슷했지만 전차 수는 1.9배였고 중화기와 공군 등 여러 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10월18일, 영국은 30군단을 필두로 이집트·리비아 국경의 솔룸 전선을 크게 우회하는 십자군 작전을 개시한다. 30군단은 기습을 통해 독일군을 혼란에 빠뜨렸으나 기갑 전력의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예하 기갑여단들을 분산시키는 실책을 저지른다.

이탈리아군이 큰 희생을 무릅쓰며 진지를 고수해 영연방군을 고착시키는 사이에 독일군의 주력 15·21기갑사단은 11월23일 벌어진 전투에서 영국 30군단 주력에 커다란 타격을 가했다. 477대의 전차로 작전에 돌입한 영국 30군단은 이날 저녁 단 44대의 전차만이 움직일 수 있었다.

1주일 만에 90%의 전차를 잃은 막대한 손실에 영국 8군사령관 커닝햄은 낙심했으며 작전을 취소하고 패배를 인정할 생각이었다. 롬멜도 영연방군의 위기를 직감하고 승부수를 띄웠다. 큰 타격을 받은 30군단은 방치하고 솔룸 전선을 향해 단숨에 100㎞를 동진, 이곳을 공략하고 있는 영국 13군단을 격파하기로 결정했다.

독일 아프리카군단 사령관 크뤼벨은 우선 사막에 흩어진 30군단을 소탕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롬멜은 이를 무시하고 몸소 3개 기갑사단을 이끌며 정신없이 몰아쳐갔다. 영연방군의 붕괴는 시간 문제인 것 같았다.

그러나 영연방군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3일 저녁, 영국 중동사령관 오킨렉은 8군사령부에 나타나 상황을 보고받고 독일군의 약점을 간파한다. 독일군도 격전 끝에 큰 손실을 입어 전차는 120대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무리한 기동으로 보급 상태가 좋지 못했다. 반면 영연방군은 아직 전장을 장악하고 있어 전차를 수리할 수 있었고 보급 상태도 괜찮았다. 오킨렉은 커닝햄을 질책하고 적을 격멸할 것을 명령한다.

이 결단으로 상황은 대반전을 맞는다. 롬멜의 예상과 달리 영국 30군단은 3일 만에 피해를 복구하며 와해된 조직력을 회복, 독일군의 후방을 휘저었다. 반면 솔룸 전선으로 진출한 독일군은 늘어난 보급선의 부담 때문에 영국 13군단을 제대로 상대하지도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이 헛된 기동으로 독일군은 치명상을 입고 주도권을 넘겨줬으며 12월에 결국 키레나이카를 내주고 퇴각하게 된다.

롬멜은 거의 승리를 움켜쥐었으나 영연방군의 불씨를 확실히 꺼뜨리지 못하면서 패배를 자초했다. 호적수를 상대함에 있어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방심하지 않고 승리를 추구해 가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그러한 신중함을 잃어버렸을 때 승리는 언제든지 패배로 돌변할 수 있음을 십자군 작전은 잘 말해 주고 있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9. 5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