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발발 16년 전인 1576년(선조 9년) 2월 식년무과(式年武科)에 급제했다. 이순신 장군의 무과급제 교지(사진)는 그가 무과시험에 합격했음을 증명하는 공식 문서다. 일종의 합격증이었던 이 교지는 현재 아산 현충사에 소장돼 있다.

식년무과는 3년에 한 번 실시되는 정식 무과시험으로 합격 자체가 어려운 시험이었다. 무관 집안 출신이 아닌 이순신 장군이 무과에 합격하기까지 활 솜씨로 유명했던 장인 방진(方震)의 영향과 도움이 컸으리라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추정이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군사사부장인 장학근 박사는 1576년 실시된 식년무과의 합격자 명단인 병자무과방목(丙子武科榜目)을 2003년 상세히 분석,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장박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당시 합격자 중 최고령은 45세이고 평균 합격 연령이 34세였다. 32세에 합격한 이순신 장군은 오히려 젊은 편에 속했다. 특히 당시 이순신 장군의 성적은 눈길을 끈다. 장군의 성적은 ‘병과 4등’으로 전체 합격자 29명 중 12등에 해당했다.

이순신 장군의 성적이 좋지 못했던 원인은 무엇일까. 당시 무과시험은 초시·복시·전시 등 3단계로 치러졌는데 최종 합격 서열을 정하는 전시 시험은 일종의 스포츠 경기인 격구만으로 치러졌다. 다시 말해 이순신 장군의 격구 실력은 그렇게 뛰어난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병법 지식을 평가하는 강서(講書)와 활쏘기에 능했지만 이들은 전시 시험 종목이 아니었으므로 최종 성적이 좋을 수가 없었던 것. 특히 격구 중 말을 타는 기격구에서 이순신 장군이 더욱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무과 합격자 29명 중 25명이 내금위·갑사 등 현직 하급 군인이었다. 민간인 신분이던 이순신 장군이 체계적으로 승마술을 배운 현직 군인들을 기격구에서 능가하기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당시 무과시험은 1등인 갑과 수석은 초임 품계가 종6품, 갑과 나머지 2명은 정7품, 을과 합격자 5∼7명은 정8품, 이순신 장군 같은 병과 합격자는 9품이 수여됐다. 이순신 장군이 9품 보직인 권관(權管)으로 군생활을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과 동시에 합격한 이들의 이후 인생 행로는 무과 성적과 큰 관련은 없었다. 당시 수석 합격자인 문명신(文命新)은 실록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다. 미관말직을 떠돌았거나 일찍 사망했다는 이야기다.

2등으로 합격한 박종남(朴宗男)도 임진왜란 당시 뚜렷한 활약이 없었으며 오히려 이순신 장군의 막하에서 조방장이 돼 6개월을 근무하기도 했다. 3등 신호의(愼好義)도 기록이 없고 4등 유몽경(柳夢經)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근무지에서 무단 이탈, 도주하는 오명을 남겼다.

미국의 군사전문가인 제임스 듀니간은 “평시 군대에서는 학교 성적, 행정 업무나 대인 관계에 우수한 장교들이 두각을 나타내게 마련”이라며 “실제 전쟁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칠 장교들을 미리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일갈한 적이 있다.

12등으로 합격해 군생활이 순탄치 않았지만 결국 세계적 명장이 된 이순신 장군의 사례는 듀니간의 지적에 음미할 대목이 있다는 점을 보여 주는 생생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5. 9. 6 >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