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전통무기 중에 불랑기(佛狼機)라는 대포가 있다. 불랑기는 대포 본체인 모포(母砲)와 포탄을 장전할 수 있는 부속인 자포(子砲)가 분리된 점이 특징이다. 미리 포탄을 장전한 자포를 여러 개 준비해 두고 자포를 교환하면 신속히 포탄을 장전할 수 있는 점이 장점이다.

한때 불랑기는 임진왜란 이후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서울 목동 지하철 공사장에서 1563년에 제작된 국산 불랑기의 자포(보물 제861호)가 발견돼 임진왜란 이전 이미 우리나라에서 불랑기를 사용했음이 확인된 바 있다.

이 흑백사진은 40여 년 전 서울 노량진에 있던 J씨의 별장에서 촬영된 불랑기다. J씨는 광복 직후 요직을 두루 거친 정객이자 전형필·손재형씨와 함께 조선 골동품 3대 수장가로 알려져 있다.

J씨 별장의 현관 기둥 역할을 한 것은 구경 72㎜의 홍이포(紅夷砲)고, 화단의 경계석을 대신하고 있던 것은 구경 40㎜의 불랑기였다. 홍이포와 불랑기는 서양 화포 제작기술이 반영·제작된 화포로 둘다 흔치 않은 군사유물. 이런 군사재가 한 유명 정객 별장의 장식품으로 전락해 비바람을 맞으면서 원형을 훼손당한 것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갔던 도공 가문의 후예인 제14대 심수관(沈壽官)이 1960년대 청와대를 방문,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의 일화.

“각하, 일본 도쿄 우에노에 있는 국립박물관에는 칼이라든지 갑옷이 많습니다. 그런데 서울의 국립박물관에서는 무기류가 별로 없습니다. 왜 박물관에 무기가 없습니까?”

“임자, 옛날 무기가 보고 싶은거요? 국립박물관에 굳이 사람 죽이는 칼을 가져다 둘 필요가 있소? 그런 것은 육사 기념관에 가면 볼 수 있을거요.”

군 출신 대통령도 옛날 무기는 국립박물관에 전시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60년대 초반만 해도 전통 무기들이 경복궁의 창고에 방치돼 있었다. 지금은 전쟁기념관과 각군 박물관이 완비돼 각종 군사문화재 보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수십 년 전만 해도 유물의 보존·관리에 문제가 많았던 것이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3. 7.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