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연구소 박사 이승리

"대전과 유성간에 젊은 청춘이∼, 모여드는 우리 항공병학교…" 이런 가사의 사이비 군가를 불러가며 20주의 훈련기간을 보내던 때가 벌써 27년 전의 일이 되어 버렸으나, 그 때의 기억은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히 나의 뇌리에 남아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4년 후 군복을 벗을 때까지의 4년 5개월간은 나의 젊은 시절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입대해서 한 일주일쯤 됐을까한 시기에 있었던 일. 어느 날 아침 내무반에서 자고 나서 식당으로 아침식사를 하러 보무도 당당히 행진하고 있었다. 나는 제 2오에서 행진하고 있었는데, 구대장이 갑자기 오더니 "앞줄의 행군속도가 너무 빠름으로 대오 후미의 키가 작은 후보생들은 따라오기가 힘들어 대오가 흩으러지니 속도를 늦추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냥 보폭만 줄이면 될 것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기합이 바짝 들어 가지고 행군시에는 보폭이 얼마, 보속은 얼마 등등이 우리들 머리 속에 박혀있어 가지고 도저히 그 당시 구대장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이해 못하겠다는 말은 못하고 그냥 대답만 "예" 해 놓고 또 전과 마찬가지 속도로- 물론 그 동안에 옆의 동료와 상의해도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못 하겠다"는 결론에 도달한 우리들은 -행군해 버리고 말았다. 그 이후의 결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다들 알 것이다.

후보생 때의 수양빵-매일 저녁 수양록 쓰는 시간에 간식으로 지급하는 곰보빵 2개-에 얽힌 일, 첫면회 때 애인(지금의 마누라는 아님)이 찾아오던 일, 첫 외박을 나가 서울의 집에 가던 일, 나로서는 유일하게 아는 찬송가인 재즈풍의 "나는 비록 약하나"를 가르쳐주던 조용찬(미국 L.A.의 순복음교회 목사)군, 자기 소개 시간에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라고 했다가 핀잔을 받던 조달훈(미국 코넬대 박사, 재미)군, 항상 M2소총을 잘못 매어서 내 손등이 자기의 개머리판에 부딪히게 하던 이현순(현대자동차 상무)군, 항상 웃는 낯의 나보다 4살이나 더 많은 김문환(국민대 법대 학장)형, 지금은 연락이 끊어진 침대 전우 강태과군, 그 옆자리의 강병래군, 늦게 공부를 시작해서 성공했다는 강영걸군, 그리고 만능 운동선수였던 신인철군, "Gas"라는 별명의 최종식 중대장님과 "느그들 말이야"의 우리 구대 구대장이신 김성융 중위님, 그리고 "절차탁마"를 늘 강조하던 최명주 중위님 등, 이 모든 일들과 사람들이 공군하면 떠오르는 얼굴이다.

내가 공군에 있을 때는 4년 반이라는 세월이 나를 잡아놓고 있는 것 같아서 "어서 빨리 재대하는 날이 와라"하고 전역일을 고대하고는 했는데,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공군에서 보냈던 4년 반이란 세월이 그냥 보내버린 세월이 아니고 우리에게 젊은 시절 한 때를 재충전해서 사회로 내보내는 시기이며, 특히 학사출신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젊은이를 모아놓아 서로가 일체감을 가질 수 있어서 그 유대관계는 공군사관후보 동기생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군대생활을 겪은 사람에게는 자기가 가장 힘든 훈련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정신적·육체적으로 단련하여 새로운 젊은이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고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 준 공군이 고마울 뿐이며, 27년 전으로 돌아가 나에게 똑같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다시 한번 공군사관후보생의 훈련을 받고싶다.

< 출처 : 공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