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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에 대한 재평가 : 장보고는 반역자인가? (2)

2. 암살당한 해양 영웅

장보고는 한국 해양사에서 전무후무한 대역사를 개척한 해양 영웅이었다. 그런데 그는 어이없게도 염장이란 자의 손에 암살당하는 불행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841년의 일이었다.

사서에서는 장보고의 암살을 그의 반란 행위에 대한 신라 왕실의 징벌이라는 시각으로 다루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며 실상은 신라 조정의 음모에 의해서 도살(盜殺)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이제 여기에서 장보고 암살의 경위와 그 성격을 살펴봄으로써, 장보고 암살과 관련된 역사적 진실을 밝혀보자.

장보고의 비극을 불러온 첫 사건은 836년에 일어났다. 그 사건의 내막은 대충 이러하다. 흥덕왕이 후사 없이 죽자, 흥덕왕의 당제(堂弟)로서 상대등(上大等)의 지위에 있던 김균정(金均貞)이 왕위계승에서 제1 순위자로 떠올랐다.

균정의 아들 우징(祐徵)은 매서(妹壻)인 예징(禮徵)과 김주원계의 김양(金陽) 등과 더불어 균정을 지지했다. 이에대해 흥덕왕의 아우인 충공(忠恭)의 아들로서 당시 시중(侍中)의 지위에 있던 김명(金明)은 이홍(利弘) 등을 포섭하여 헌정(憲貞. 균정의 형)의 아들인 제륭(悌隆)을 지지하면서 왕위쟁탈전에 뛰어들었다.

양 파벌은 치열한 시가전을 벌였으며, 결국 김명이 지지한 제륭이 왕좌에 올라 희강왕(僖康王)이 되었다. 균정은 그 쟁투의 와중에 피살되었고 그의 아들 우징과 그를 지지하던 김양 등은 잔병(殘兵)을 거두어 청해진을 찾아가 장보고의 보호를 받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838년에 중앙에서 상대등 김명은 시중 이홍 등과 더불어 정변을 일으켜 자신들이 옹립한 희강왕을 핍박하여 죽게 하고, 자신이 직접 왕위에 오르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민애왕(憫哀王)이 그였다.

이에 대해 우징은 아비와 임금의 원수 민애왕을 토벌할 것을 장보고에게 요청하였고, 장보고는 그 요청을 받아들여 청해진의 군사를 일으켜 민애왕을 죽이고 우징을 왕위에 추대하였다. 이가 신무왕(神武王)이다. 장보고의 비극은 여기에서 싹이 텄다.

신무왕(혹은 그의 아들 문성왕)은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삼을 것을 약속하였는데, 군신(群臣)들이 이에 반발하여 좌절시켰다. 이에 신라 조정이 장보고의 동향을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보던 중, 무주 출신 염장이 자청하여 장보고를 암살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 출처 : 해군본부 >

2004-06-25 18:4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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