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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에 대한 재평가 : 장보고는 반역자인가? (3)

3. 장보고가 왕위쟁탈전에 개입하게 된 동기

여기에서 우리는 장보고의 암살 사건을 장보고의 입장에서 몇 가지 문제를 재음미할 필요가 있다.

① 장보고가 왕위 쟁탈전에 관여하게 된 동기의 문제

② 納妃를 둘러싼 권력관계의 동향 문제

③ 장보고가 과연 난을 일으키려 했는가의 문제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역시‘당시 장보고가 과연 정치적 야망이 어느 정도였는가’라는 물음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먼저 장보고가 왕위 쟁탈전에 관여하게 된 동기를 살펴보자.

장보고가 왕위 쟁탈전에 개입하게 된 것은 김명이 희강왕을 핍살(逼殺)한 직후인 838년의 일이었다.

김우징은 김명의 희강왕 핍살 사건에 대해 신하가 임금을 죽인 무도한 행위로 지목하고 장보고의 개입을 설득하였던 것이고, 장보고는 이 사건을 불의(不義)한 난으로 간주하고 이를 징벌하는‘의로운 일’에의 동참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미 우징은 김명 일파에 패하여 837년에 청해진에 피신해 들어간 이후로 집요하게 장보고의 개입을 설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장보고는 이에 일체의 미동도 보이지 않다가, 신하인 김명 등이 희강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는 사건이 터지자 비로소 우징의 설득을 받아들여 난을 평정하는 의로운 일임을 내세워 동참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러한 장보고의 왕위 쟁탈전에의 개입 시점은 그의 정치적 성향을 파악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먼저 정보고는 정치적 사건에 가능하면 개입하려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만약 그가 정치에 관심이 컸다면, 우징이 청해진에 들어왔을 때 곧바로 그와 결탁해서 행동에 옮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보고의 재당 시절의 행적을 더듬어 보면 이러한 그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이유를 대개 짐작할 수 있다.

일찍이 장보고는 당에 건너가 서주 무령군의 소장직에 올라서 당 황실에 대항하던 평노치청의 번수 이사도 세력의 소탕전에 참여하면서, 황실에 대항하는 정치적 도전이 얼마나 무모하고 무상한 것인가를 절감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사도 세력을 진압한 직후에 그가 무령군 소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나서 새로이 추구했던 것은, 재당 신라인사회를 결집해서 이를 정치적 야망 실현에 이용하기보다는 국제 해상무역의 분야에 연결시키고자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그의 성향은 귀국 후에 청해진 체제를 건설하면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837년에 우징이 청해진으로 피신해 들어오면서, 장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정치판에 빠져들게 되었던 것 같다.

즉 838년에 중앙에서 신하가 왕을 죽이는 사건이 일어나자, 우징은 장보고의 의분(義憤)에 불을 붙여 참여를 유도했던 것이고, 장보고는 그에 설복당하여 결국 빠져나올 수 없는 정치판에 깊숙히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다.

두목(杜牧)이 평했던 인의지심(仁義之心)이 충만한 그의 성품이 그로 하여금 의(義)를 쫓아 정치판으로 쏠리게 했던 반면에, 또 한편의 성품인‘명견(明見)’으로도 정치판 개입 이후 자신에게 닥칠 운명을 예견하지 못했던 셈이다.

바로 여기에 장보고의 비극이 있었다.

< 출처 : 해군본부 >

2004-06-28 17: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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