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Home MR뉴스 무기체계 컨텐츠 신제품 유료존 MR기네스 KNIVES 특수부대 軍뉴스 프리존
장보고에 대한 재평가 : 장보고는 반역자인가? (4)

4. 장보고 딸의 납비(納妃)를 둘러싼 파워 게임

다음에 두 번째의 문제, 장보고의 딸 납비(納妃)를 둘러싼 권력관계의 동향에 관한 문제를 짚어보기로 하자.

장보고 딸의 납비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두 가지의 기사가 전한다.

그 기사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국왕은 장보고 딸을 비(妃)로 맞는 것에 대해 적극성을 띠고 있었던 것에 반해, 군신들은 이를 극력 반대하여 저지했다는 점이다. 실제 신무왕은 즉위하자마자 장보고를 감의군사 식실봉이천호(感義軍使食實封二千戶)로 삼았고, 문성왕도 역시 즉위하자마자 그를 진해장군(鎭海將軍)으로 삼고 장복(章服)을 하사하였으니, 두 부자왕(父子王)은 장보고의 공적에 대해 높이 신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추론해 볼 수 있겠다.

신무왕과 문성왕이 장보고에게 특별한 작호를 내리고 그의 딸을 납비하려 했던 것은, 장보고의 공훈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왕위를 위협하는 권신들의 발호 가능성에 대비해 장보고의 힘을 빌어 왕위를 지키려는 의도도 있었지 않았을까 한다.

실제로 그 직전에 신하 김명이 자신이 추대한 희강왕을 핍살하여 왕위를 찬탈한 사건이 일어난 바 있었으며, 또한 장보고가 거느린 군사력의 위력은 민애왕 김명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국왕의 납비 시도에 대해 반기를 들었던 중심 인물은 누구였을까?

아마도 우징을 신무왕으로 추대하는 데 앞장섰던 김양(金陽)이 바로 그였을 가능성이 크다.

김양은 일찍이 흥덕왕 사후에 균정을 추대하려다가 김명 일파에게 패하여 균정의 아들 우징과 함께 청해진에 피신하여 와신상담 기회를 엿보던 중, 838년 장보고의 거병(擧兵)에 힘입어 평동장군(平東將軍)의 군호(軍號)를 띠고서 참전하여 민애왕 김명을 타도하고 우징을 신무왕으로 즉위시키는 데 앞장선 자이다.

신무왕과 문성왕에게 김양은 장보고와 더불어 일등 공신에 책봉되기에 마땅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신무왕과 문성왕은 장보고에 대해서는 특별 작호를 내리고 그의 딸을 납비하고자 하는 등 특별 배려를 하였음에 반해, 김양에게는 어찌된 영문인지 관직을 제수했다는 기사가 일체 보이지 않는다.

이는 신무왕과 문성왕이 중앙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을 김양의 정치적 야망에 대해 장보고의 힘을 빌어 견제하려 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김양은 이에 대해 군신(群臣)들을 동원하여 신분의 측미(側微)함을 내세워 장보고 딸의 납비 시도를 두 차례에 걸쳐 좌절시키는 한편, 최대의 정치적 위협 대상 인물인 장보고를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몄을 가능성이 있다.

그 때 마침 염장(閻長)이 장보고 제거의 행동 대장을 자처하고 나서자, 김양이 그를 사주하여 장보고를 암살케 하고, 중앙의 막후 실권자로 부상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김양이 일찍이 청해진을 관내에 둔 무주(武州)의 도독(都督)을 지낸 바 있다는 사실과 염장이 무주인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김양이 염장을 사주하여 장보고 암살을 주도했을 가능성이 크다.

< 출처 : 해군본부 >

2004-06-29 18:29:35

덧글쓰기

협력기관 및 업체 : 대한민국 공군 - 대한민국 해군 - 국방일보 - 국정브리핑 - Defense LINK - 군사저널
공정거래위원회 고시 제2000-1호에 따른 안내, 사업자 등록번호 : 220-86-07275
(주)아이엠알코리아, 대표이사 주재은, 전화 (02) 578-8278 (■ 잡지 취급하지 않습니다. 문의사절합니다.), 통신판매업 허가 : 서초 제 3300호
광고문의 - 개인정보 취급방침 - MR 이용자 약관 - 회원관련문의 - 탈퇴신청
Copyright ⓒ 1998-2017 (주) iMR C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