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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에 대한 재평가 : 장보고는 반역자인가? (5)

5. 과연 장보고는 난을 일으켰는가?

이제 마지막으로 장보고가 과연 난을 일으키려 했는가의 문제를 살펴볼 차례이다.

일반적으로 염장에 의한 장보고 제거를, 장보고가 난을 일으켰던가 아니면 난을 일으키려 했던 것에 대한 응징인 것으로 보려는 것이 사서들의 기본적인 기조인 것 같다.

그렇지만 사서들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찾아지고 있는데, 이러한 차이점을 좀더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먼저「삼국사기」에는 자신의 딸의 납비(納妃)가 좌절되자 장보고가 이를 원망하여‘청해진을 근거로 반란을 결행’한 것으로 되어 있는 반면, 「삼국유사」에는 장보고가 군신(群臣)들의 반대로 딸의 납비가 좌절되자 심하게 불만을 표출하면서‘난을 도모하고자’했다거나, 혹은‘장차 불충하려 했다’하여 그가 난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음만을 지적하고 있다.

앞에서 살폈듯이 장보고 딸의 납비를 둘러싼 문제가 국왕과 김양 사이의 파워게임적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납비의 관철 여부가 당사자인 장보고와 전혀 무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납비가 좌절되면서 자신을 신임하던 왕권이 크게 위축되고, 김양을 중심으로 신권(臣權)이 부상하는 것에 대해서 장보고가 모종의 대응책을 강구하였을 가능성은 있겠다. 그렇지만 그가 정치적 반란을 모의하거나 결행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조선시대 사서에서는 장보고의 암살을 누명에 의한 억울한 죽음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부가 쓴「동국통감」의 사론에 의하면,‘도적과 같은 모략’을 받아 억울한 누명을 쓴 것으로 판단하여 두둔하고 있다. 또한 안정복도「동사강목」의 사론에서 장보고가 중상모략에 의해‘도살(屠殺)’된 것으로 단정하고, 장보고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서 김양의 책임론을 펴고 있다.

결국 장보고는 왕위 쟁탈전에 어쩔 수 없이 개입하게 되었고, 또한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자신의 딸 납비 문제가 중앙 정치권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결국 염장의 손에 암살당하는 비운의 주인공으로 전락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는 음모와 술수가 판치던 당시 중앙 정치판의 희생양이었던 셈이다.

[ 完 ]

< 출처 : 해군본부 >

2004-06-30 18: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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