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삼국시대에 양날 칼인 검(劒)에서 외날 칼인 도(刀)로 칼의 주류가 바뀐다. 양날 칼인 검은 양쪽에 모두 날을 만들기 때문에 칼등에서 힘을 받쳐줄 수 없다. 반대로 도는 한쪽에 날을 만들고 반대쪽 칼등을 강하고 두텁게 해 칼날 몸체의 강도를 유지해주게 된다.

이 탓에 검은 외날 칼인 도에 비해 강도가 떨어지며 잘못 휘두를 경우 부러질 수 있다. 이런 강도상의 차이 때문에 검은 주로 찌르는 용도로만 사용된다. 반대로 도는 찌르는 용도뿐만 아니라 베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선시대의 칼 유물 중에는 수십여 자루의 검이 남아 있다. 삼국시대에 실전용으로 사용하지 않던 검이 조선시대에 이토록 많이 사용된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시대에 사용된 검은 대부분 인검(寅劒) 종류인데 이 칼은 실전용 칼이 아니라 특별한 의식용 목적으로 만들어진 칼이었다. 인검은 특별한 시기에 왕실에서 제작, 주요 대신들에게 하사한 칼이다.

인검에는 사인검·삼인검·이인검 등 세 종류가 있다. 사인검(四寅劒)은 십이지상의 인년(寅年)·인월(寅月)·인일(寅日)·인시(寅時)에 제작된 검이고, 삼인검(三寅劒)은 인년·인월·인일에, 이인검(二寅劒)은 인년·인월에 제작된 검을 말한다. 이처럼 특별히 범띠 해에 칼을 만드는 이유는 용맹한 동물인 범의 상징성 때문이라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견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인검에 대해 “인검은 재앙을 물리치는 도구” “좌도(左道)에 관계된 물건” “사귀(邪鬼)를 물리칠 수 있는 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좌도는 유교가 아닌 이단적 사상을 의미한다. 전통도검 연구가인 이석재 경인미술관 관장은 지난해 6월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전통도검 세미나에서 “범의 간지는 음양(陰陽)에서 양(陽)의 기운을 상징하며, 인년·인월·인일·인시에 칼을 만드는 이유도 더욱 강한 양기를 받기 위한 것”이라며 “조선시대의 인검은 중국 송나라의 전설적 도인(道人) 여동빈이 쓰던 벽사용 칼인 순양검(純陽劒)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조선시대 인검의 겉모습은 송나라의 검과 유사한 점이 많아 이관장의 이런 주장은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인검은 실전용 칼은 아니지만 왕실에서 제작한 칼인만큼 장식이 장중하고 특별한 품격이 돋보이는 칼이다. 더구나 ‘귀신과 재앙을 물리칠 수 있는 칼’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광복 이후 골동품 시장에서 정·재계 요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3. 8. 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