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분야의 최근 화두는 단연 자주국방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부터 자주국방을 강조해온 데 이어 지난 광복절 경축식에서 향후 10년 내 자주국방 역량을 구축할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사실 자주국방은 역대 정부가 지향해 오고 있는 국가안보정책의 대명제다. 그 결정적 전기는 고 박정희 대통령이 1973년 을지연습 순시에서 자주국방을 역설하면서부터라고 생각된다.

당시 박대통령은 80년대에는 주한미군이 완전 철수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자주국방을 위해 군사전략과 전력증강 계획을 발전시키고 작전통제권 인수에 대비, 장기전략을 수립하고 중화학공업 건설로 고성능 전투기와 미사일을 제외한 주요 무기·장비를 국산화하도록 지시했다. 그 이후 국방예산이 국내총생산(GDP) 6%까지 책정된 바 있고 방위세가 신설되고 방위산업이 육성되면서 한국방위의 한국화는 달성 가능한 숙제로 인식될 수 있었다.

78년 한미연합사 창설로 등장한 한·미 연합방위체제와 94년 평시 작전통제권 인수도 자주국방을 향한 로드맵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참여정부가 30년 전과 비슷한 배경과 방향으로 자주국방을 새삼 역설하고 있다. 그 당시는 베트남 전쟁 종료에 즈음한 닉슨 독트린에 따라 주한 제7사단 철수, 지금은 9·11테러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 변경에 따른 주한미군 재배치가 자주국방을 촉구하는 계기로 보인다.

자주국방의 필요충분조건은 경성능력과 연성능력의 동시 확보에 있다. 국방예산 증편을 통한 전력증강은 자주국방에 필요한 경성요소다. 참여정부는 이 점을 인지해서 다른 부문의 예산소요 우선순위를 감안, 당장 내년 국방예산을 GDP 대비 3%대로 늘리기는 어렵지만 몇 년간 점증 방식으로 그 수준을 보장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주국방의 연성요소는 독자적 전략기획 및 작전수행능력이다. 연성능력을 제대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리 나름의 국방전략을 구상하고 기획해 나갈 필요가 있다.

국방전략은 국가안보전략을 위한 핵심적 체계이자 군사전략의 상위개념으로 군사력을 활용해 전쟁예방과 억지를 우선적으로 도모하는 자주국방의 요체가 될 수 있다.

국방전략은 전시 군사력의 구체적 운용을 다루는 군사전략에 대한 지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유엔사령부체제가 한·미 연합방위체제로 변경돼 25년간 발전시켜오고 있는 연합작전 계획은 엄밀히 말해 군사전략에 해당한다.

자주국방의 또다른 충분조건은 예방방위 및 협력방위의 역량 확충이다. 대북 군사적 신뢰를 구축해 군비통제를 추진하며 대주변국 군사외교를 통해 국방예산 소요를 상대적으로 완화하는 일도, 동맹과 다자안보 협력을 활용해 독자적 방위능력을 보완하는 일도 자주국방을 향한 국방전략의 핵심사항이 돼야 한다.

또한 남·북·미 3자 군사안보관계의 분석도 자주국방 방안 수립을 위해 우선해야 하는 작업이다.

즉 교류·협력과 군사적 대치가 혼재하는 남북한의 이중적 특수관계와 지난달 말의 베이징(北京)6자회담에서 보았듯이 북한 핵과 대북 적대정책으로 얽혀 있는 미·북의 사실상 적대관계, 그리고 북한도발 억제를 위한 한·미의 동맹관계 등을 자주국방을 위한 국방전략에 정확히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자주국방의 첫걸음은 ‘한국적’(韓國的) 국방전략의 개발이라 말할 수 있다. 관념이나 명분보다 한국 특유의 안보현실에 대한 국방 비전을 달성하는 것이어야 한다. 여기에는 중·장기 안보위협의 여부와 정도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꼭 포함돼야 할 것이다.

<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전경만 >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3. 9.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