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國특성 맞춰 설계

평원 ·사막 혹은 산지 등 상정되는 전장의 차이는 공격력을 중시할 것인지, 방호력을 중시할 것인지, 아니면 기동력을 중시할 것인지 하는 전차의 설계기준 차이로 나타난다. 그러나 오늘날 각국의 주력 전차에는 이러한 차이를 뛰어넘는 공통적인 요건이 있다.

120㎜ 급의 포, 신소재를 응용한 장갑, 큰 출력의 엔진에 기민한 기동력, 하이테크를 응용한 화력제어장치(FCS) 등 각국 전차의 메커니즘에 대해 3회에 걸쳐 소개한다


◆ 각국의 선택

`현대의 전차는 이래야 한다'라든지 또는 `최강의 전차는 이 전차다'라고 단언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상정하는 전장과 전술이론의 차이에 따라 평가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중부 유럽과 같은 대평원 지대를 주전장으로 상정하는 여러 나라들도 전술 이론의 차이에 따라 전차 설계상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전통적으로 방어를 중시하는 영국은 기동력을 희생하면서까지 방호력을 중시한 전차를 주력으로 채용해 왔다. 치프텐의 외피 전체는 16ｔ, 정면장갑은 14ｔ, 차체와 포탑의 총중량은 전체의 52%를 차지한다. 얼마나 장갑이 두꺼운가를 알 수 있다. 반면 속도는 도로에서 시속 48㎞에 불과해 현대 전차로서는 느린 편이다.

프랑스군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전격전에 당한 뼈아픈 경험 때문인지 무엇보다 기동력을 중시한다. 걸프전에서 AMX의 결함이 나타나 르클레르의 개발을 가속화하기까지는 그렇게 믿은 것 같다.
독일도 기동력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프랑스보다 균형잡힌 전차를 선호한다. 이 때문에 레오파르트 I 시리즈만으로도 7개국에 2700대 이상을 수출할 수 있었다.

미국은 승무원의 탑승감과 생존성을 우선시한다. M - 60까지 미국 전차의 높이가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탑승감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높아진 것이다. 40년 만에 새로운 설계로 만들어진 M-1의 설계 우선순위를 보면 승무원의 생존성, 목표 포착 능력, 명중 정밀도, 포탄 발사시간(rise time), 도로가 아닌 곳에서의 기동력 등의 순서이다.
이스라엘의 경우 미국과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 즉 이스라엘은 인구가 많지 않아 전투자원의 획득이 문제가 돼 인명 손실을 크게 우려한다. 이러한 고려 사항이 전차 설계에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되는데, 즉 엔진을 앞부분에 배치해 생존성을 중시한 메르카바를 주력으로 삼고 있다.


◆ 전차용 엔진

`먼저 엔진을 결정한 뒤에 설계를 시작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차의 생명은 엔진이다. 제2차 세계대전, 6 ·25전쟁 때 명성을 떨친 구소련의 T-34가 걸작이라는 이름을 남긴 것도 경합금을 많이 사용해 소형 ·경량화한 500마력 엔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 전차의 엔진은 디젤 엔진이 주류를 이룬다. 연료에 불이 붙기 어렵고 저속에서 회전력이 좋으며 연비도 좋기 때문이다. 레오파르트에 탑재한 MTU 사의 1500마력짜리 MB873가 유명하다. 4사이클, 12기통, 총배기량 7.6ℓ, 액랭식(液冷式)으로서 레오파르트 I에 장착했을 때 단위중량당 27.27마력의 괴력을 낸다.

전차의 엔진은 가능한 한 공랭식을 사용하는 것이 중량대 추력비가 좋고 구조를 비교적 단순하게 할 수 있어 피격시나 정비지원상 유리하다. 그러나 출력이 커지면 발열량이 커지므로 냉각효율상 액랭식이 아니면 엔진에 무리가 온다. 디젤 엔진이 연비가 좋다고는 하지만 출력이 커지면 연료를 엄청나게 소모할 수밖에 없다. 레오파르트 II의 경우 적재연료는 1200ℓ이다. 이 연료로 달릴 수 있는 거리는 도로상에서 550㎞이므로 반듯한 도로에서조차 1ℓ로 460ｍ밖에 달리지 못하는 셈이다. 그래도 이것은 나은 편이다.

미국은 M-48까지 가솔린 엔진을 사용했기 때문에 디젤 엔진의 개발이 늦어졌다. 그래서 M-48 및 M-60까지 가솔린 엔진을 사용하다가 M-1은 아브코 라이커밍 사의 AGT 1500 가스 터빈 엔진을 도입했다. 이 엔진도 1500마력으로 ｔ당 27마력이다.
가스 터빈은 엔진 본체가 소형 ·경량화하는 장점이 있지만 냉각장치와 엔진 필터가 대형화하기 때문에 파워 플랜트 전체를 놓고 보면 디젤 엔진과 큰 차이가 없다. 또한 저온시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으며 연비가 극도로 나쁘다. M-1의 적재연료는 1900ℓ이다. 도로상 항속거리가 약 500㎞이기 때문에 ℓ당 약 260ｍ밖에 달리지 못한다.

단위중량당 30마력에 가까워짐에 따라 도로주행 속도는 시속 70㎞를 돌파했다. 도로 주행속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가속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됐다는 점이다. 처음 출발해서 30㎞/h에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약 7초로 ｔ당 15마력이던 때보다 두 배나 빨라졌다.
T-34로 대출력에서 선수를 친 구소련도 마지막에는 상당히 뒤처졌다. T-62는 580마력, ｔ당 14.5마력이었지만 T-72는 780마력으로 ｔ당 19마력이다. T-80 ·T-90에서 대폭 상향을 시도하고있다.

변속장치는 유체동력(하이드로 카이네틱) 기술을 응용한 자동변속장치(torque converter)가 주류를 이룬다. 이 변속장치로 승용차에 버금가는 조작성을 확보할 수 있다. 구소련은 변속장치에서 엄청나게 뒤처져 T-62까지 사람의 힘으로 조작했다. T-64 ·T-72에 이르러 마침내 동기형(synchronization)이 됐지만 서방측과 같은 원활한 기어 조작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공군사관학교 교수 권재상 대령〉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3. 9.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