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야기 - 조종사가 되는 길 ② : 공군 R.O.T.C


어릴 때부터 비행기 장난감과 항공기 프라모델만 보면 사족을 못쓰던 오하늘군(가명). 오군이 가지고 있던 하늘과 비행에 대한 막연한 동경은 고등학교 시절 '파일럿('93년 MBC 방영)'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확실한 인생목표로 자리잡았다.

'그래 저거다!'

오군은 드라마 '파일럿'의 주인공들이 걸었던 길을 따르기 위해 힘을 다했다. 오군은 마침내 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에 입학하고, 공군 ROTC에 입단한다.

지금은 최신예 F-16 항공기를 몰고 하늘을 누비는 대한민국 정예 조종사 오하늘 대위. 그에게 들어보자. 공군 ROTC를 통해 어떻게 훌륭한 조종사가 되었는지...


대학시절(1학년-2학년)

항공운항학과의 첫 느낌은 여느 대학 여느 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과의 새내기들에게는 남다른 것이 있었으니 바로 미래의 파일럿이라는 자부심. 미팅을 나가서도 우리는 '예비 조종사'라며 온갖 폼(?)을 잡았고, 상대방이 조종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일라치면 우쭐한 기분에 장광설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렇게 (좀 서둘러 앞서나가긴 했지만) 마음으로부터 조금씩 하늘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항공운항학과 학생들은 다른 과 학생들은 누릴 수 없는 특전(?)을 누린다. 그건 바로 공부를 좀 게을리 해도 '대의명분'을 세울 수 있다는 것. 이유인즉슨 공부를 많이 하면 눈이 나빠지고, 그러면 공군의 조종사 신체검사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1학년 때는 선배들의 가르침(?)을 받잡고 건강관리에만 최선을 다했다. 우하하하!

그러던 중 새로운 소식을 알게 되었다. 항공운항과에서 공군 ROTC를 지원하면 장교로 임관 후 비행교육을 거쳐 전투조종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민항기 조종사도 멋지지만, 어찌 최신예 전투기를 타고 조국의 하늘을 지키는 것과 비할 수 있으랴... 난 2학년이 되자마자 '오직 건강'에 대한 신념을 접고 공부, 또 공부... 공군 ROTC후보생에 도전장을 던졌다.

※ 잠깐! 우리나라에서 공군 ROTC는 한국항공대학교 밖에 없고, 항공대 남학생이면 누구나 지원조건에 따라 ROTC를 지원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중 항공운항학과 학생만이 공군 조종사가 될 수 있다.


고달팠던 1년차

　(1) 기초 군사훈련



내가 원한다고 쉽게 ROTC가 되는 건 아니었다. 전투조종사가 되기 위해서는 복잡한 신체검사를 통과할 수 있는 건강, 평점 3.0 이상의 성적, 그리고 장교후보생으로서 각종 자질이 필요했다. 다행히 통과. 마지막 '테스트'가 바로 가입교 훈련이었다.

3학년 개강을 한달 앞둔 추운 겨울 새벽, 우린 가입교 기초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학군단 연병장으로 향했다. 진주 공군교육사령부로 가는 입영 열차에 몸을 실은 나는 앞으로 일어날 무시무시(?)한 일은 전혀 예견하지 못한 체 단잠에 빠져들었다.

7시간에 걸친 대장정(?) 끝에 도착한 진주,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다. 그런데 진주에 도착하자마자 선배들과 훈육관들의 눈빛이 마치 먹이를 찾는 맹수의 그것처럼 표독스럽게 변했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각오해!" 선배들의 날카로운 일성에 오금이 저려올 지경이었다.

70일처럼 느껴지는 일주일 동안 인간의 한계를 넘나들며 군인으로서 기본을 배웠다.

이를 악물고 훈련을 하다보니 어떠한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장교의 마음가짐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한국항공대학교 ROTC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훈련의 자세한 내용? 百聞이 不如一見. 뜻 있는 분은 직접 경험해 보시라!


　(2) 하계입영훈련



ROTC로서의 본격적인 생활은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수업 들으랴, 학군단 수업 들으랴(주당 6시간), 선배들의 '애정어린 가르침(?)' 받으랴…. 어떻게 한 학기가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느덧 여름, 다른 학생들은 방학이라고 여행이다, 피서다 하고 계획을 짜고 있을 때, 우린 하계입영훈련을 위한 짐을 싸고 있었다. 또다시 진주행 기차, 이미 한번 뜨거운 맛을 본 우리들의 모습이란...

'이번엔 한 달이다.', '한 번 해보자' 굳게 마음을 먹었지만 작열하는 7월의 태양 아래 몸은 지쳐갔다. 그래도 마음은 훈련을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며 이 생활에 점점 적응하고 있었다.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 같던 수료일과 일 주일간의 황금같은 휴가. 우리는 이미 군인이 되어 있었다.


　(3) 군기해제



하계훈련을 마치고 군사 훈련과 전공 공부를 병행하며 분주한 2학기를 보냈다. 2학기에 넘어야 할 가장 큰 '고개'는 선배들이 우리들을 후배로 인정해 주는 의식인 '군기해제'였다. 선배들에게 당당한 후배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 그게 바로 전우애요, 선후배간의 情 아니겠는가?

가을에 접어들자 선배들은 우리들을 철인(?)으로 만들기 위해 한층 더 열을 올렸다. 새벽에 등교해서 운동장 구보를 하고 종강 후 다시 체력단련에 임하는, 이른바 '더블헤더'가 이어졌다. 그렇게 훈련을 받던 11월 어느 날, 유난히 혹독한 체력훈련을 하고, 우린 선배들의 최종 가르침(이건 대외비^^)을 받고 정식후배로 인정받았다. 우린 모두 서로를 격려하며 부둥켜안고 울고 말았다. 그 동안 겪었던 힘든 훈련 과정, 그리고 갖가지 에피소드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부러울게 없던 2년차 시절

그렇게 1년차가 가고 이젠 우리가 선배가 되었다. 행복할 것만 같았던 2년차에 등장한 또 다른 복병은 바로 비행훈련이었다.

※ 잠깐! 항공운항학과는 3학년 때까지는 비행이론에 대해 공부하고 4학년이 되면 비로소 비행훈련에 들어가게 된다. 1년의 비행훈련을 통해 기준 비행시간을 채우고 건교부 이론시험을 통과하면 자가용 항공기 면장을 취득하게 된다.

교수님의 지도아래 4인승 경비행기 세스나로 본격적인 비행훈련을 받았다. 비행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솔로 비행이 다가오자 그 긴장은 극에 달했다. 누가 건드리기라도 하면 마치 팽팽한 고무줄처럼 끊어질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미 비행시간은 25시간 가량이었지만 오직 나 혼자 내 몸뚱이와 항공기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는 중압감은 군사훈련 때의 육체적 고통에는 비할 수 없었다.



나 혼자만의 조종석…. '고독'이라는 단어가 이처럼 어울리는 장소가 또 있을까. 손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 때 교신기를 통해 울리는 교수님의 한 마디. "이젠 네가 주인공이야. 혼자서 멋지게 날아봐!"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힘차게 파워를 넣고 조종간을 당겼다. 순간 항공기는 활주로를 박차 올랐다. 나의 첫 솔로비행 이륙이었다.

안전하게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착륙했다. 교수님께 인사를 드리고, 마침내 자랑스러운 WING 배지를 가슴에 달았다. 그리고 한 양동이의 물을 흠뻑 뒤집어썼다. 이것은 이제 조종사로서 새싹처럼 쑥쑥 크라는 항공운항과의 전통적인 의식이었다. 내게는 마치 전투기 조종사로서의 길을 가게 되었다는 세례식처럼 느껴졌다.

솔로비행이 끝나고 우린 정규 과정을 거쳐 무사히 자가용 면장을 취득했다. 또한 ROTC 과정도 무사히 이수해서 멋진 공군소위로 임관했다. 그리고 공사 출신 동기들과 함께 전투조종사가 되기 위한 비행훈련과정을 모두 이수하고 영광스런 '빨간 마후라'를 받게 됐다.


에필로그

전투기 조종사가 되는 길은 몇 가지가 있다. 나는 캠퍼스와 연병장을 함께 경험한 ROTC 출신 장교로서 파일럿의 길을 가고 있다. 2년간의 캠퍼스 생활, 2년간의 ROTC생활, 그리고 2년간의 비행훈련…. 이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온 나의 일부분이고 앞으로의 나를 만들어 가기 위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리라 의심치 않는다.

성공은 꿈꾸는 자의 몫이다. 파일럿을 지망하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파일럿이 되겠다는 꿈을 잃지 않는 것이다. 꿈꾸어라. 그 순간 하늘은 당신 것이다.

< 출처 : 공군=밀리터리 리뷰, 2003. 10. 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