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이야기 : 제법 난다, 중등훈련

두 번째 고개, 중등훈련을 앞두고



최초 국산훈련기 KT-1. 2000년 6월부터
공군의 중등훈련기로 쓰이고 있다.


초등훈련을 마치고, 중등훈련에 입과할 때의 심정은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4개월 간의 초등훈련도 그렇게 길었는데, 중등훈련의 기간은 그 두 배나 된다.

한 가지 마음을 설레게 하는 점은 최초의 국산훈련기 KT-1을 탄다는 사실. 새 항공기를 조종한다는 사실도 그렇거니와, 우리 기술로 만들었다니 기대감은 더욱 크다.


이론교육 한 달, 고시생의 자세로

초등훈련에서처럼 처음에는 이론교육을 받는다. 이 시기에는 소속 비행대대를 떠나 학술교육대대라는 곳으로 출근, 항공기의 T.O.(Technical Order, 항공기 매뉴얼이라 보면 됨)를 비롯해 국지 절차, 비행 교범 등 중등훈련에 필요한 비행 기초 지식을 배운다. 외워야 할 것도 무지 많다. 물론 시험도 본다.

중등훈련에서 자신의 첫 이미지를 결정짓는 계기이기도 하기 때문에 학생조종사들은 1개월 여의 이 기간동안 고시생의 입장이 어떠한가를 느껴보게 된다.


학생조종사의 하루, 24시간이 짧다



보통 학생조종사는 앞좌석에, 교관은 뒷좌석에 탑승한다.


1개월의 이론교육이 끝나고 시작된 본격적인 비행훈련. 출근시간은 비행 스케쥴에 맞춰지는데 여름철의 경우는 새벽 출근이 부지기수다. 출근 후엔 전체 브리핑, 개별 브리핑, 비행, 비행 후 브리핑, 자습 등 저녁 9시까지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전체 브리핑의 브리퍼는 학생조종사들이 돌아가면서 맡는다. 그 날 비행할 과목에 대한 브리핑이 끝나고 나면, 뒷쪽에 앉은 교관들이 학생조종사들의 숙지 정도를 점검하기 위한 무차별 질문을 퍼붓는다. 30분도 채 되지 않는 이 시간이 세 시간보다도 길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지식도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싹 지워지고 만다. 그러면 어김없이 엎드려 팔굽혀펴기! 비행절차는 가장 긴장되고 급박한 순간에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런 긴장된 분위기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벌칙성 단체 구보도 수시로 주어지기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하지 않아도 기초체력은 탄탄하게 유지된다.

개별 브리핑은 직접 동승할 교관과 1:1로 하는 것으로, 더욱 세세하고 실질적인 비행연구를 가능케 한다.


초단독 비행, 그 긴장과 쾌감

담당교관과 처음 비행을 나간 날. 이륙 순간 초등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감에 먼저 기가 질린다. 이렇게 빠른 항공기를 과연 조종할 수 있을까? 초등 때와 비교되는 것을 찾자면 끝이 없다. 초등 때는 고도도 낮았고 뱅크(Bank, 항공기 동체를 좌우로 기울게 하는 조작)도 45˚이상은 넘어가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1만 4천 피트까지 올라가 90˚이상의 뱅크는 예사다.



초단독 비행은 중등훈련 과정에서 넘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고개.


360˚기동(Loop) 등 에어쇼 때나 하는 줄 알았던 기동들이 기본 과목으로 운영된다. 초기에는 매일 매일의 비행이 공포고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그러나, 교관과 항공기에 대한 신뢰가 두터워지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성취감도 쌓여간다.

어느 덧 초기 적성평가가 끝나고 초단독 비행을 앞두게 된다. 학생조종사 혼자 이륙해서 1회의 장주비행(기지 주변을 도는 비행)을 마치고 착륙해야 하는 것이다. 단독비행은 초등에서도 한 번 해봤지만, 중등 단독비행이 주는 긴장감은 어마어마하다.

초단독 비행이 있는 날은 단장 이하 비행단의 모든 요원들이 신경을 곤두세운다. 학생조종사 자신의 압박감은 말할 나위가 없다. 드디어 홀로 시동을 걸고 창공에 나간다. 확 트인 하늘.. 사방에 아무도 없다. 뒷좌석에 도와줄 교관도 없다.

저 앞에 착륙할 활주로가 보인다.

"31 Gear check(31번 랜딩기어 점검, 내리겠다)
"31 Clear to land(31번 착륙을 허가한다), Aiming(착륙 목표지점에 점을 찍는 것)
해라"
“Roger(알았다)!”
"Power idle(추력 줄이고), Run way(활주로) 멀리 보고 방향 유지하라"
“Roger(알았다)!”

런웨이콘트롤(Run way control, 활주로상에서 이착륙을 조언해주는 곳)과 침착하게 교신하며 랜딩기어를 내리고, 착륙절차를 밟는다.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다.

착륙에 성공해 캐노피를 열고 바깥 공기를 마시는 그 느낌은 이 과정을 거친 조종사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모르리라.


혼자보다 둘이 어렵다?



KT-1 편대 이륙(Wing Take-off).


초단독 비행을 무사히 마친 학생조종사들은 거의 조종사가 다 된 듯한 우쭐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편대비행이라는 거대한 산에 부딪히면 다시 한없이 작아진다.

두 대의 항공기가 일정한 대형을 이루어 비행하는 것을 편대비행이라고 한다. 호수 위에 떠 있는 우아한 백조가 물 속에서는 쉼 없이 발길질을 해야 한다. 푸른 창공을 나란히 나는 항공기 조종사도 대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쉼 없이 조종간을 움직이고 출력을 조절해야 한다.

그러나 그 조작이 이리도 어려울 줄은 몰랐다. 조금 앞선다 싶어 출력을 줄이면 이내 쳐지고, 조금 쳐진다 싶어 출력을 높이면 한없이 앞서고. 정말이지 처절하기 그지없다. ‘내가 이렇게도 ‘곰 발바닥’이었던가...‘

오직 위안이 있다면 교관의 한 말씀.

“열 번 비행하기 전에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신기하게도 열 소티(sortie)가 넘어가니 항공기가 옆 항공기에 딱 붙어서 가는 것이 아닌가? 그 짜릿함이란...

더 나아가 Wing Take-off(두 대의 항공기가 편대 대형을 유지한 채 동시에 이륙하는 것) 단독비행까지 무사히 마치게 되고... 한 걸음 한 걸음 중등훈련의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계기비행 - 장님이 길을 가듯이

중등비행에서 익혀야 할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바로 ‘계기비행’이다.

계기비행이란, 기상이 나쁜 상황에서 오직 계기에만 의존해 비행하는 것이다. 기상상황을 예측하는데는 한계가 있어 언제 어떻게 변할지 장담할 수가 없다. 때문에 조종사에게 계기비행 능력이 없다면 안전한 귀환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야간비행은 모든 것이 계기비행으로만 이루어진다.

처음 계기비행을 시작할 때는 오직 계기만을 들여다보고 비행해야 했기에 눈 따로, 몸 따로, 그야말로 멀미가 날 지경이다. 연구해야하는 양은 왜 그리도 많은지...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지만 계기비행은 연구한 양과 질에 비례해 그 결과가 나오므로 한시도 비행연구를 게을리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 기초가 쌓이니 나름대로 재미가 붙는다. 밖은 하나도 보지 않고 오직 계기로만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형님같은 교관



'비행이란 이런 것이구나!' 이제 조금 알 듯.


초등에서는 대부분 나이 드신 교수님들께 비행을 배운다. 세대 차이가 있다보니 아무래도 존경심 위주의 감정이 형성되게 된다. 그러나 중등에서는 교관과 학생간의 나이 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형님과 아우같은 관계가 이루어지게 된다. - 물론, 무서울 땐 엄청 무섭다. ^^;;

비행이 없는 주말이면 가볍게 맥주도 한 잔 하면서 그 동안 못했던 이야기, 고민 등을 털어놓으며, 쌓였던 서운함과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리기도 한다. 중등 때 교관과 학생으로 맺어진 인연은 그 어떤 인연보다도 돈독하게 이어지곤 한다.


이제 다음 고개로

어느 덧 다가온 수료.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8개월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늘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는 과정이라 쉽지는 않았지만, 중등비행교육을 통해 비로소 “비행이 이런 것인가”하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고등훈련, CRT(Combat Readiness Training) 등 가야할 길은 아직 멀다. 그러나, 중등훈련 이후 하늘에 훨씬 익숙해졌다. 제법 날게 된 것이다.

< 출처 : 공군=밀리터리 리뷰, 2003. 10.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