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이야기 : 고지가 저기다! 고등훈련

한조종 중위(25, 가명), 드디어 초·중등 비행훈련을 무사히 마쳤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자신의 모든 능력을 펼쳐 내야 하는 힘든 과정이었다. 이제 남아 있는 과정은 마지막 관문인 고등비행 훈련과정.

"솔직히 중등비행 성적도 '걸어 다니는 커트라인'이었는데,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같이 들어 온 정하늘 중위는 진짜 우수한 성적에 조종에 대한 감각까지 천부적인데. 아, 부럽다…."

그래도 힘내자! 이제는 8부 능선, 빨간마후라가 고지에서 휘날린다!


지상 학술교육

"중등비행을 마쳤다고 자네들이 정예 조종사라 생각하나? 그건 절대로 오산이다! 고등 과정에서는 총 350여 시간의 학술교육을 이수해야 하며, 그 주요 내용은 항공기 이론, 지식, 계기 비행…."

뭣이? 350여 시간이라고라? 갈수록 태산이다. 차라리 낙하산 메고 벌칙 구보하는 게 낫지... 아무리 조종사가 되는 길이 멀고 험하다지만, 듣기만 해도 머리에 쥐가 난다. 그래도 선택은 하나다. 자, 달려들어 보자!


시뮬레이션 훈련

"한조종! 뭐하는 거야! 그런 안이한 자세로 전투기를 몰 수 있을 것 같아?!"

오늘도 나능숙 교관님의 호통은 귀를 쨍쨍하게 한다. 한조종 중위는 한숨을 쉬며 캐노피를 열었다. 가까스로 착륙에 성공한 활주로 화면이 꺼지고, 어둑어둑한 시뮬레이션실로 돌아왔다. 한 치의 실수도 어김없이 찾아내는 교관님들은 선후배고 뭐고 없다. 오로지 새끼를 절벽에서 밀어버리는 어미 사자의 모습일 뿐.

시뮬레이션 훈련은 실제 항공기와 똑같은 모의 환경에서 비행훈련을 하는 것이다. 1994년에 당시 100억 원 정도의 고가로 도입한 장비이다. 정말 실제 비행 같다! 시뮬레이션 장비는 비행기동 숙달 및 전투기의 기동 원리 이해에 없어서는 안될 장비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시뮬레이션 덕분에 한조종 중위의 조종 기술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간다.


비행훈련



고등비행 교육은 T-59, T-38항공기로 이루어진다. 한조종 중위는 단단해 보이는 첫인상의 T-59 '호크'로 비행을 시작했다. 후방석에 앉은 따가운 교관의 시선이 느껴지는 건 여전하다.

첫 비행은 스스로 생각해도 엉망이었다. 너무 긴장하다보니 실수 연발. 절차 암기도 어물어물할 정도였다.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진 않지만, 같은 교관 아래 있는 정하늘 중위와 자꾸 비교되는 느낌이다. 어쩔 수 없이 풀이 죽어 있는데, 교관님이 어깨를 툭 치며 한마디 던지고 지나가신다.

"넌 다 좋은데, 자신감이 너무 부족해. 넌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공군 보라매다."

고등 비행훈련 과정은 공중 특수기동, 이착륙훈련, 고등계기비행, 항법 비행, 전술 편대 비행, 야간 단독비행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과목으로 이어진다. 음속에 가까운 빠른 기동은 대담함과 세심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조종사의 손끝에서만 가능하다. 한조종 중위, 이제는 오기로 달려든다. 호크야, 내 너를 길들이고 말리라!


자기 관리 실패는 치명적인 결과로

그러던 어느 날, 자습하고 있던 한조종 중위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게 된다. 바로 동료 정하늘 중위의 훈련과정 탈락. 고등 과정 들어올 때만 해도 최고의 기량을 뽐내던 정하늘 중위. 항상 조용해서 몰랐는데, 그간 복잡한 개인 사정으로 슬럼프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모든 능력을 걸어야 하는 비행에선 조금의 흔들림도 비행기량에 직결된다.

※ 조종사가 되는 길에 있어 중요한 것은 천부적인 소질보다는 힘든 과정을 이겨낼 수 있는 인내와 성실함이다. 뛰어난 자질을 보이고도 자기 관리를 잘 못해 중간에 그만두는 정하늘 중위와 같은 사례가 실제로 종종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막대한 세금으로 운영되는 훈련 과정에서 개인이 적응해오기를 언제까지나 기다려 줄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비행 안전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마침내 빨간마후라

8개월의 교육기간 끝에 드디어 마지막 날이 밝았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이런 설레는 느낌을 가진 것이 얼마 만인가!

사실 오늘 받는 수료증 한 장은 의미가 없다. 이미 우리들의 마음에, 그리고 온 몸에 배어 있는 지난 훈련들의 성과가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으니까.

역시 가장 감격스러운 것은 빨간마후라를 매는 순서. 이제 정식 조종사가 되었다는 상징이다. 보통 이날 참석한 지휘관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직접 매어 준다. 아마 앞으로 언제까지나 잊지 못할 순간일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길. 그러면서도 겉으로 빛나는 명성보다는 반드시 해내겠다는 자신 안의 굳은 다짐과, 목숨을 내걸고 조국 하늘을 지키겠다는 사명감으로만 갈 수 있는 길. 조종사의 길이다.

< 출처 : 공군=밀리터리 리뷰, 2003. 10.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