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이야기 : 우리를 '여성' 조종사라 부르지 마라


여조종사들과의 솔직한 대담

問 :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어주셔서 감사하다. 이제는 ‘최초의 여조종사’라는 타이틀에 이력이 나셨을 만도 한데.

한정원 중위 : 이목을 끌기 위해 선택한 길이 아닌데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니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단지 여자라는 것 때문에 시선을 끈다든지, 다른 처우를 받는 것 같아 불만이었다. 하지만 그런 부담이 내 생활의 긴장요소가 되었고, 득이 된 점도 많은 것 같다. 이젠 부담스럽거나 자존심 상하는 것은 없다. 다만 우리가 열심히 함으로써 다른 후배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

박지원 중위 : 생도 때 처음엔 카메라를 보고 동기 중에 연예인이 있는 줄 알았다. 그냥 내버려뒀으면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비행훈련을 받거나 자대 배치받았을 때 선배님들이 처음엔 기대 반, 거부감 반이었던 것 같은 경우도 있었는데, 나중에는 “(남녀 구분없이) 다 똑같더라”하신다.





問 : 비행대대 생활은 어떤가?

편보라 중위 : 물론 남자들만 있던 대대에 내가 들어옴으로써 달라진 것도 많고, 불편해진 점도 없지 않을 것이다. 또 자유시간을 조금 더 주는 등 동기들보다 더 챙겨주시기도 한다. 그런 걸 생각하면 조종사로서 대대원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 가장 큰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박지원 중위 : 여자이기 때문에 겪는 고민이란 건 정말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당장 한 사람의 당당한 조종사로서 기량을 쌓는 일이 제일 급한데 다른 일에 신경을 쓸 수 있을까.


問 :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장세진 중위 : 물론 일반인이 겪을 수 없는 아름다운 하늘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야간 비행 때 아래로 보이는 도시의 모습도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답다.

박지연 중위 : 처음 대대로 배속된 날이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 대대에서 신고를 하는 그 짧은 순간에 지난 사관학교 4년, 비행훈련 2년이 휙휙 지나가더라. 이제는 생도 혹은 학생조종사의 신분을 벗어나 정식 조종사가 된 것이니까. 물론 앞으로도 늘 노력해야겠지만.


問 : 앞으로의 각오를 간단히 밝혀달라.

한정원 중위 : 가끔 ‘누굴 위해 조종사가 되었나’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나를 위해? 그것만을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내 자신의 선택이었지만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것은 교관 선배님들, 동료들, 사관학교, 더 나아가 국가이다. 단순한 조종사가 아니라 ‘군인’조종사로서의 삶을 살 것이다.

편보라 중위 : 아직은 신참조종사이지만 앞으로 없어서는 안될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 비행기량 보유자가 아닌 지덕체를 겸비한 하늘의 지휘관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問 : 조종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박지원 중위 : 사실 조종사의 생활이 낭만적이진 않다. 하지만 그런 거친 생활마 저 자부심과 명예심으로 극복할 수 있는 멋진 사람들이 조종사이다. 빨간마후라를 맨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 조종사는 한번도 보지 못했다.

박지연 중위 : 어떤 일이든 프로가 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그러기 위해선 무한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많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꿈을 접는다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여가시간에는 TV사극 보기, 남자친구와 데이트하기, 피아노 연주를 한다는 평범한 여성적인 면과, 임무 완수 및 지휘관으로서의 자세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군인다운 면을 동시에 가진 오늘 대담의 주인공들. 그들은 오늘도 묵묵히 우리의 하늘을 지키고 있는 믿음직한 보라매였습니다.



오늘도 꿈을 품는다 (중위 한정원)

나는 매일 하늘을 나는 연습을 한다. 한 마리 새처럼 날갯짓을 하고, 땅에 디디고 있던 두발을 힘차게 굴러 가벼운 공기에 내 몸을 싣는다. 어미새는 내게 비행을 가르쳐준 공군이고, 비행교관들이다. 그리고 지금은 2년여의 훈련기간을 마치고 256비행대대를 새 보금자리로 하고 있다.

‘먼저 꿈꾸지 않는다면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좌우명이다. 6년 전, 난 멋있고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어서 공군사관학교를 지원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꿈은 그리 구체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막연한 동경과 기대가 컸던 것 같다. 영화에 나오는 전사처럼 강하고 멋진 인생을 살고 싶었다.
최초라는 부담감, 싸움 같던 생도 시절

마침내 사관학교에 입교를 했고, 나를 포함한 19명의 여자 동기들은 사관학교시절 동안 참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최초’라는 수식어는 늘 우리를 따라다니며 남들보다 뛰어나야한다는 부담감을 주었다.

실제로 생도 때는 ‘남자도 할 수 있는데, 여자는 그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했었다. 동기들을 경쟁상대로 생각했고, 마치 투사처럼 무엇에 대해서든 싸워서 이겨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군사훈련이라는 힘든 과정에서 이러한 생각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고 느꼈다. 그때는 남자와 여자의 신체적인 차이를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내가 이겨야 할 존재, ‘동료’ 아닌 ‘나 자신’

이렇게 강해지기만 바라던 고집스런 나는, 장교가 되어 비행훈련을 받으면서 철이 들기 시작했다. 내 옆에서 땀을 흘리며 같이 고민하는 존재는 남자 혹은 여자가 아니라 같은 동료인 것이다. 결국 내가 이겨내야 했던 존재는 내 옆의 동료가 아니라 나 자신의 이기심과 나약함이었다. 이제는 내가 힘이 들 때 그들이 나를 이끌어주었듯, 나도 그들이 힘들어할 때면 내 한쪽 팔을 빌려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우선 강해져야 할 것이다. 체력적, 정신적인 강인함은 물론 나의 일에 대해서도 전문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만 나 이외의 다른 동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 강인하고 멋있는 조종사를 꿈꾸었고, 6년이 지난 지금 조종사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6년이라는 기간동안 좌절도 많이 했고 내가 가고 있는 길에 대해 의심도 많이 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고비를 극복할 때마다 나는 이기심을 극복하며 강해져갔다. 진짜 나의 좌우명처럼 나는 다른 사람보다 먼저 공군 조종사가 되어야겠다는 목표를 가졌고,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 물론 지금의 모습이 내 마지막 목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6년 전에도 그랬듯, 오늘도 난 멋있고 후회 없는 삶을 위해 또 다른 꿈을 품고서 하늘을 난다.

< 출처 : 공군=밀리터리 리뷰, 2003. 11.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