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이야기 : 100명의 조종사에게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총 9회에 걸쳐 "조종사가 되는 길"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마지막회를 맞아 실제 오늘도 영공수호에 최선을 다하는 조종사 100명의 목소리를 모았습니다. 작전사령부 예하의 F-4, F-5, KF-16, T-38, T-59, A-37 조종사 여러분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바쁜 임무 중에 꼼꼼히 답변을 작성해 주신 조종사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설문조사의 결과를 토대로 '가장 평균적인 조종사'인 김평균 대위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김대위를 통해 조종사들의 생생한 모습을 만나 보세요!

나는 김평균 대위. 올해 서른 세 살,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 조종사다. 비행시간은 1,221시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고참' 대위이다. 아내는 대대에 배치된 이후 선배의 소개로 만나 사귀다 결혼에 골인했다. 조종사들은 비교적 빨리 안정된 직장을 가지는 셈이기 때문에 결혼도 대체로 빠른 편이다. 지금 세 살 짜리 귀염둥이가 하나 있다. 새근새근 잠자고 있는 모습은 말 그대로 천사다. 자주 놀아주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평소의 생활

조종사로서 제일 중요한 것은 비행 컨디션이다. 당연히 체력관리가 최우선이다. 바쁜 스케줄이지만 2∼3일에 한번 정도는 꼭 개인운동 시간을 가지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거의 개인적인 운동 시간을 가지지 못할 정도로 바쁜 조종사들도 꽤 된다. 물론 시간을 쪼개고 쪼개가며 매일 운동은 거르지 않는 동료들도 있다. 대대에서는 매주 하루 체육의 날을 정해 단체운동을 하기 때문에 기초체력은 다들 자신 있다.

단체운동 때에는 당연히 축구가 최고 인기이다. 모처럼 비행이 없는 휴일이면 친한 동료끼리 모여 부대 체력단련장에 골프 연습을 가기도 한다. 아직은 잘 치지는 못한다.

■ 체력관리 시간 : 2∼3일에 한번 - 48%, 거의 못한다 - 27%, 아무리 힘들어도 매일 한다 - 7%
■ 좋아하는 운동 : 축구 - 53%, 골프 - 27%, 테니스 - 14%


조종사들의 일상

조종사로서의 생활은 당연히 쉽지 않다. 비행시간이 많다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고공환경에서의 비행착각, 급격한 중력 변화는 익숙해 질 수 있는 종류의 어려움이 아니다. 가장 힘든 것은 아무래도 잦은 대기상태, 비행 스케줄에 따른 불규칙한 생활이다.

비행과 관련해서는 학생조종사가 아니라도 계속 공부를 해야 한다. 대부분 매일 1∼2시간씩은 공부를 하는 편이다. 비행은 새처럼 훨훨 나는 낭만이 아니라 완벽한 규정 숙지 하에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절차의 연속이다.

■ 비행관련 학습 투자 시간 : 매일 1∼2시간 - 73%, 3∼4시간 - 23%

하지만 고등학교 때 전투기 조종사가 되기로 한 이후 후회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누가 하라고 해서도 아니고 오로지 나의 뜻으로 선택한 길이다. 평소 지론상 아이의 장래는 스스로에게 맡겨두겠지만 만약 내 아이가 조종사가 되겠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긍지 높은 일이고, 최고의 선택이다. 직업으로 보아도 사회적으로 크게 인정받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고공환경에서 가장 어려운 요소 : 비행착각 - 46%, 중력변화 - 38%
■ 조종사로서 가장 힘든 부분 : 잦은 대기상태 등 불규칙한 생활 - 65%, 임무 중 돌발사태 - 14%
■ 조종사가 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 스스로의 결정 - 66%, 영화·드라마에서 혹은 실제로 본 조종사들의 모습 - 27%
■ 자녀의 진로 결정은
: 조종사가 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한다 - 24%, 스스로의 결정에 맡긴다 - 70%

비행이 없으면 주로 취미활동을 하거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만약 조종사가 되지 않았다면 성실한 직장인으로서도 잘 적응하고 살았을 것 같다. 흔히 하는 상상과 달리 조종사들에게 필요한 요소는 모험정신이나 과감성이 아니라 인내와 성실, 끈기이다. 나의 목숨도, 나의 애기도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은 설문지의 주관식 질문에 대한 조종사들의 답변을 발췌한 것입니다.


하나. 비행 전 징크스가 있다면?

자나깨나 비행 안전을 중시하다보니 사소한 것에도 신경을 쓸 법한데요. 응답 중에는 '전날 밤 꿈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가 많아 전날의 예감을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사관학교 반지를 꼭 낀다', '비행전날 밤늦게 전화를 받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떨어지다>라는 동사를 쓰지 않는다', '중요한 비행 전에는 브리핑 후엔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등 자신만의 징크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징크스를 만드는 것 자체가 자신을 얽어매는 것이다'라고 답변한 분이 가장 많았습니다.


둘. 조종사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조종사를 꿈꾸는 분들이 가장 궁금해 할 부분입니다. 'T-37 제트 훈련기로 첫 솔로비행을 나섰을 때'라고 답해 주신 분이 가장 많았습니다. 한 사람의 조종사로서 당당히 자신의 날개를 펼친 첫 비행인 만큼 많은 분들이 꼽아 주신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야간비행 중 본 도시의 모습(구름 위의 모습, 별이 가득한 밤하늘' '별똥별이 떨어지는 밤 비행' '하루의 첫 비행으로 가장 먼저 본 일출' '저녁 비행 때 본 노을' '동해상공에서 목격한 북상하는 고래가족' 등 아름다운 자연과 우리 국토의 모습을 보았을 때라고 답해 주신 분도 많았습니다. 정말 듣기만 해도 멋있고 부러운 대목이죠?

이외에도 '생환 훈련시 구워먹었던 뱀' '야간 빗속에서의 착륙' '조작 실수로 사고 날 뻔한 비행' 등 어려웠던 순간을 꼽아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수많은 시련이 탁월한 조종사를 만들어내는 법입니다.


셋. 자신의 비행철학을 한 마디로

조종사들의 한 마디는 그들의 삶의 치열함만큼 많은 것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중 몇 가지만 간추려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규정과 절차 속에 정제되어 자유로운 날개짓
- 물위에 떠 있는 평화로운 물새의 모습은 물밑의 부지런한 발 때문이다.
- 날개를 얻고 싶다면 다른 것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 조종사는 天人, 하늘이 받아준 사람이다. 하늘에 맡기고 노력하자.
- 칵핏 안에 갇히지 말고 그 밖을 보는 사람이 되자.
- 비행의 질적 성과는 준비 시간에 비례한다.
- 자신감과 자만을 구분하고, 욕심과 과욕을 분별하자
- 나 자신을 믿어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라.
- AIM HIGH BUT STEP BY STEP
- 비행은 부드러운 예술이다.

< 출처 : 공군=밀리터리 리뷰, 2003. 11.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