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대가 공중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다. 싱가포르를 일본의 위협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급파한 영국의 대형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레팔스는 동인도양에서 일본기의 폭격으로 전선에 합류하지도 못하고 격침됐다.

또 한반도 사찰의 종은 물론 민가의 숟가락까지 거둬다 만든 일본 전함 야마토와 무사시도 태평양 초입에서 미 해군기의 공격으로 수장됐다. 이들 대형함은 거대한 함포로 무장했으나 공중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은 그리 수준 높은 편이 되지 못했다.

요즘 함대방공체계는 종래의 것과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어느 정도 위력 있는 체계인가 하는 주제를 검토해 보는 것은 새 세기의 안보문제에서 피해갈 수 없는 과제다. 함대방공의 새로운 방안으로 제시된 여러 가지 방어 개념 중에서 오늘날 대표적 개념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 종합적 다층방어 개념인 이지스 체계다.

이 시스템에 주어진 이지스(Aegis)라는 별명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신 제우스가 그의 딸 아테네에게 준 방패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일체의 사악함을 씻어낸다고 하는 이 방패의 이름을 날아오는 다수의 대함 위협(미사일 ·항공기)으로부터 함대를 지키는 새로운 방공체계에 붙인 것을 보면 미 해군이 이지스 시스템에 대해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적의 공중 위협으로부터 함대를 지키기 위한 체계개발 노력은 오래 전부터 있었으나 기술 수준의 미흡과 관심 부족으로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본격적인 움직임은 1963년 이지스 시스템을 연구하면서 시작됐다. 함대방호 체계의 필요성이 관심을 끌게 된 계기는 67년 발생한 에일러트호 격침 사건이다.

이스라엘의 구축함 에일러트가 이집트 해군의 유도탄정이 쏜 스틱스 대함 미사일을 맞고 순식간에 격침된 이 사건은 대함 미사일의 위력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던 세계 각국에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이후 미국은 스스로 대함 미사일의 개발에 나서는 동시에 새로운 함대방호 체계의 구체화를 서둘렀다. 즉 대함 미사일 시대에 대비, 창 ·방패 양쪽 개발에 박차를 가했으며 오늘날 보는 바와 같이 창에 해당하는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과 방패에 해당하는 이지스 시스템이 등장했다.

에일러트 쇼크 이후 함대방호 체계의 연구는 가속화됐다. 69년에 RCA 사와 제조계약이 체결됐고 72년에는 이 시스템의 핵심이라 할 SPY-1A 위상배열 레이더(phased array radar)의 시작품이 완성, 지상 실험이 시작됐다. 이어 1974~76년에 걸쳐 실험한 노튼 사운드에 SPY-1A를 포함한 이지스의 시험 시스템을 탑재, 여러 가지 해상 실험을 했는데 모두 좋은 성과를 올려 이지스 시스템의 실용화를 볼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 시스템을 어떤 함에 탑재하는가 하는 단계에 들어서자 해군과 의회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이지스 탑재함의 건조계획은 난항을 거듭했다. 우선 해군이 이지스 탑재함의 으뜸 후보로 점찍은 만재배수량 1만7000ｔ의 원자력 타격 순양함은 지나치게 비싸다는 이유로 취소됐고 이어 대안으로 제출된 만재배수량 1만2000ｔ의 개량형 버지니아급 원자력 순양함만을 건조하자는 안이나, 만재배수량 1만7525ｔ의 원자력 순양함 롱비치 개조안도 번번이 빛을 보지 못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의회와 의견의 일치를 본 것이 만재배수량 9.250ｔ의 스프루언스급 구축함에 이지스 시스템을 탑재하는 안이다. 스프루언스급은 구축함이기는 해도 근대화로 인한 중량 증가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여유를 지닌 대형함인데다 무엇보다 이지스 시스템의 탑재를 예측하고 설계된 함이기도 했다. 노튼 사운드를 활용한 해상실험이 끝난 지 4년 만인 80년 1월21일, 드디어 최초로 이지스 시스템을 탑재한 타이콘데로가(Ticonderoga：CG47)가 미시간 주의 잉걸스 조선소에서 건조되기 시작했다.

계획 초기에 타이콘데로가는 미사일 구축함으로 분류되었지만 이지스의 탑재로 만재배수량이 9600ｔ에 달해 완성되면 미 해군이 보유하는 어떤 미사일 순양함보다 커져 기공 직전에 미사일 순양함으로 격상, 마침내 83년 1월22일에 취역했다.

해군은 타이콘데로가급보다 한 단계 작은 이지스함의 건조계획도 구체화하고 있다. 이것이 축소형 이지스를 탑재하는 미사일 구축함 만재배수량 8400ｔ의 알레이 버크급으로 90여 척을 건조할 계획이다.

구소련 해군은 전통적으로 미국 항공모함에 대한 효과적인 공격 수단으로 항공 ·해상함 ·잠수함에서 실시하는 대함 미사일 공격을 중시해 왔는데 70년대에 들어서자 대함 미사일에 의한 동시 공격을 한층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소련이 75년 세계적인 규모로 실시한 오케안75훈련에서 이러한 경향이 현저히 드러났다. 이 훈련에서는 일정 해역 주변에 모인 다수의 항공기와 함정이 가상 목표를 향해 동시에 대함 미사일 공격을 퍼부어 소련 대함 미사일의 위력을 과시했다. 이때 발사된 대함 미사일은 100발이나 되며 모두 90초 이내에 표적에 명중했다고 한다.

이러한 대함 미사일의 동시 공격에 대해 종래의 테리어나 타타르 체계로는 도저히 대항할 수 없게 됐고 결국 이지스함의 복합목표 동시 처리 능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공군사관학교 교수 권재상 대령 holdon@unitel.co.kr〉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3. 9.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