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격진천뢰는 우리나라 전통 대포 종류인 대완구(大碗口)에서 사용하는 포탄이다.

비격진천뢰는 다른 전통 포탄 종류인 철환(鐵丸)·단석(團石)과 달리 폭발력이 있는 파열탄(破裂彈)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초창기 대포에서 발사하는 포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폭발하지 않는 단순한 고체 덩어리 발사체(solid projectile)에 불과했다. 포탄이 적에게 도달할 때까지 폭발을 지연시키는 기술을 개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고체탄은 폭발력이 없어 단순히 충격력만 가지고 있다. 당연히 실제 적을 살상하는 용도보다 성이나 선박 같은 구조물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하지만 비격진천뢰는 내부에 화약을 충전하기 때문에 적 위치에 도달할 때쯤 자체폭발을 일으켜 파편으로 적을 직접 살상할 수 있다.

비격진천뢰는 16세기에 화포장(火砲匠)인 이장손(李長孫)이 처음 개발했으며 임진왜란 당시 실전에서 사용됐다.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선생의 저서인 ‘징비록’(懲毖錄)을 보면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이 경주성 전투에서 비격진천뢰를 사용, 파열탄을 처음 본 왜군이 크게 당황하고 후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봐도 비격진천뢰를 사용한 기록이 남아 있다. 유럽에서 비격진천뢰 같은 파열탄, 다시 말해 폭발형 발사체(explosive projectile)를 최초로 지상전에 사용한 시기는 16세기 중엽이며 해전에서 최초로 사용한 시기는 18세기 말부터였다.

중국에서는 비격진천뢰와 유사한 파열탄 종류인 진천뢰라는 무기를 12세기부터 사용했지만 이것은 손으로 던지는 수류탄에 가까운 무기였다.

비격진천뢰의 내부에는 대나무통(木谷)이 들어 있고, 이 대나무통에 화약선(도화선)이 감겨 있다. 화약선을 대나무통에 감는 횟수에 따라 폭파시간을 조절한다. 원거리에 발사할 때는 여러 번 감고, 단거리에 발사할 때는 화약선을 감는 횟수를 줄였다.

비격진천뢰는 일종의 원시적인 지연신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의 진천뢰에는 이와 유사한 장치가 없다.

전쟁기념관 박재광 학예관은 “비격진천뢰의 내부 구조는 중국의 진천뢰와 다르다”며 “한국의 비격진천뢰는 중국의 진천뢰와 구별되는 독창적 무기”라고 평했다. 결국 비격진천뢰는 유럽과 비슷한 시기에 독자적인 한국 기술로 만든, 당시로서는 가장 선진적인 폭발형 발사체였다.

육군박물관에 소장 중인 비격진천뢰는 이런 중요성을 감안, 보물 860호로 지정돼 있다. 지난 6월 초 경남 창녕 화왕산성 내부를 발굴하는 도중 땅속에서 비격진천뢰 1발이 새롭게 발견됐다.

박학예관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곽재우 장군이 화왕산성에서 왜군과 전투를 벌였다”며 “이번에 발견된 비격진천뢰는 임진왜란 당시 비격진천뢰가 널리 사용됐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 출처 : 국방일보=밀리터리 리뷰, 2003. 9. 17 >